손꼽아 기다리던 분사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계약서에 새로 서명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근무지는 원래 사용하던 본사 근처의 공유 오피스로 옮겨졌다. 스타트업이 많이 사용하는 그런 곳답게 널찍한 휴게 공간과 다양한 간식, 사방으로 트인 전망 등이 있었다. 그동안 느꼈던 답답했던 공기가 높아진 층고에 맞게 탁 트인 듯했다.
사명만 정해진 채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로고, 비전 등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하지만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느낌이라 다들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다들 일에 열정이 있고,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들만 남은 것이기 때문이었는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고,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내가 속하게 된 TF팀은 얘기되었던 대로 동기와 나, 단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업을 구상하고 규모를 키워가면서 인력 채용도 자유롭게 요청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찬 얘기가 들려왔다. 결정이 어렵거나 논의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서포트를 보장받았고, 분사에 따라 나오기를 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기는 전체적인 전략, 사업개발, 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나는 서비스 개발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당했다. 각자가 일당백을 넘어서 천, 만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서버, 웹, 애플리케이션까지 전설로만 들리던 풀스택 개발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 달 정도 밤을 새 가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불편을 겪는 유저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기분을 처음 맛보았을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거창한 사명까지 느껴졌다. 아직 회사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설계, 개발부터 QA까지 단 두 명이서 어찌저찌 헤쳐나갔다. 아침에 눈을 떠 자기 전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일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가끔 꿈에서도 일을 하고 있었다. 팀장을 맡았던 동기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만에 처음 열린 타운홀 행사에서 우리의 피땀이 잔뜩 묻어있는 프로토타입을 소개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주니어 두 명이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전사가 우리 팀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내가 몸 담은 그 조각배는 좋은 바람을 만나 순항을 하는 듯해 보였다.
그때부터인 듯하다. 우리만 타고 있던 작은 배에 조금씩 다른 선원들이 타기 시작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여기저기 사업체와의 미팅에 불려 다니는 일이 많아졌고, 심지어는 정치적인 싸움의 패가 되어 이리저리 움직여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개발 인력을 충원해 달라는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윗선의 그들은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던 우리와는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바로 본사에서 함께 넘어온 고여있는 이들이었다.
작년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항해는 어느새 정체된 지 오래였고, 의미 없는 회의들에 불려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되돌아왔다. 추후에 듣기로는, 본래 다른 사원들의 의지 정도만 북돋아 주는 용도로 이 TF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어 오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고, 본격적으로 사업화를 해봐야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시기에는 숟가락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 둘 밥상에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힘들게 수소문해서 구한 인력들에 대해서 면접을 본 후 윗선에 올려보아도 그들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대기업 안에서 높은 학벌과 고스펙 지원자들만 보아서 눈이 높아졌던 탓이리라 생각했다. 학벌과 실력을 비례하지 않고, 실무적인 능력은 훨씬 다른 지표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 명이 충원되어 팀원은 총 세 명이 되었다.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서비스를 만들어나갈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무의미하게 보내게 되는, 정치에 의해 지연되는 그 태풍의 눈 안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었고, 어느 그릇에 담아도 그 성질을 잃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에게는 외주 개발사를 사다 줄 테니 개발 관리를 하라는 업무 요청이 오게 되었다.
나는 그날부터 다시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잠깐 꿨던 행복한 꿈은 <구운몽>의 장자처럼 긴 듯했지만 깨어보니 한 순간이었고 이곳에서는, 이 그룹에 속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뜻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합류를 권했던 동기조차 나의 이직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추후를 기약하며 이별을 맞게 되었다. 다시 만나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재벌 그룹을 아예 떠나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회사로 이직을 결심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성장하기 좋은 환경으로 유명한 그런 기업이었다. 면접을 보는 그 순간부터 질의응답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으며,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강력한 끌림이 있었다. TF팀에서 힘들게 만들었던 서비스를 토대로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해나갈 수 있었으며, 큰 어려움 없이 최종 합격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미련 없이 완전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아도 큰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전부 해보았으며, 어떤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좋은 가르침마저 얻었기 때문이었다. 붙잡는 손길을 뒤로한 채 또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