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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06. 2023

뿌리가 튼튼한 사람

 

 새해가 되면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할 '만 삼십'이 됐다. 공상을 즐겼던 중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삼십이립(三十而立)이란 단어를 보면서 떠올렸던 어른의 모습은 사실 지금의 나에겐 없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여주인공이 어니언베이글을 물고, 한 손엔 따뜻한 커피를 들고 마치 런웨이를 걷는 것처럼 출근하는 모습은 역시 영화에서만 가능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가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을 몇 년 뒤로 미루며 살고 있다. 그나마 달라진 건 나이가 들어 데이터가 조금 쌓여서 그런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미세하게나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를 들을 때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잘 들려야 하고, 특정 단어에 꽂히면 주야장천 듣는다. 고기는 돼지도 소도 아닌 닭고기, 특히 굽네치킨 고추바사삭은 힐링푸드다. 꾸덕한 식감, 특히 리코타치즈샐러드를 좋아한다. 바다보단 산을 좋아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처럼 영상미가 있고, 볼수록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치마보단 바지를 좋아하고 특히 셔츠와 청바지 스타일링을 좋아한다. 영어보단 중국어를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사소한 취향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작년 한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한 해였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웃을 일도 많았기에, 작년을 고이 잘 접어 마음속에서 보내줬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새해엔 어떤 내가 되어야 할지 조금씩 스케치를 해보고 있다. 정답이야 없겠지만, 올해는 월 천만 원, 체지방률 18%라는 정량적인 목표가 아닌, 조금 추상적인 목표를 세웠다. 사소한 취향들을 파악하고 나를 잘 만들아나가기. 이 취향들을 자양분 삼아 뿌리가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나의 재정 상태도 잘 체크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계부를 작성해 재정 흐름을 잘 파악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영양소들이 들어있는 질 좋은 음식들로 건강을 챙기고 싶다. 매일 요가와 필라테스로 바디 쉐입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마음의 근력도 키우고 싶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오늘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네가 먹고 싶은 걸로'라며 선택을 넘기지 말고 당당하게 '오늘은 고기를 먹자!'라고 제안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들이 잘 담긴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의 뿌리를 단단히 하고, 무럭무럭 잘 커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잘 다져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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