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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r 05. 2023

나를 사랑하기

  온전히 혼자 보내는 주말이 왔다. 예전엔 일어나자마자, 룸메이트들이 깰까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히 옷을 챙기고 나와 씻고 바로 정처 없이 강남 일대에 문을 연 카페를 찾아 나섰다면 이번 주말부턴 두 배 더 넓어진 침대에서 뭉그적 거리면서 여유 있게 아침을 맞이했다. 새벽이 아닌, 해가 어느 정도 드리운 아침에 눈을 뜬 게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로 푹 잤다.(그래봤자 나에게 늦잠이라 하면 일곱 시 반 정도다.) 고작 10평 남짓 되는 원룸인데도 무슨 청소거리가 많은지 아침부터 또 쓸고 닦기 바빴다. 운동을 갔다 오고 정갈하게 식사도 잘 차렸다. 제법 그릇과 커트러리로 구색을 잘 맞추고, 건강한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유일하게 아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 한 권과 또 한 번 읽어야지 다짐했던 책을 꺼내 들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애초 먹고 싶던 케이크는 없었지만 직원 분이 위트 있게 다른 케이크를 추천해 주셨고 덕분에 또 다른 달달한 케이크를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유난히 술술 읽혔던 건 기분 탓일까. 예상보다 일찍 책을 다 읽어서 산책이나 하자고 밖에 나와서 걸었더니, 피부에 닿는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봄이 왔다. 나는 봄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이라 항상 매해 벚꽃이 절정에 이르는 날짜를 꼬박꼬박 기록하고 기억에 새기곤 했는데, 이제 그럴 시기가 다가왔다는 사실에 설렜다. 그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네 작은 꽃집에서 노란 꽃을 사서 책상 한편에 꽂아, 방 안에 봄기운이 은은하게 퍼지게 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엄마에게서 전화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에게 ‘오늘 되게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커리어니 미라니 잡생각을 고이 접어두고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던 날이어서 그런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 그래 마음이 편안하면 된 거지 ‘라며 오늘의 나를 응원해 주셨다.


  이전 회사에 다닐 당시,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한 주 열심히 일했다는 보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굽네치킨 고추바사삭을 시켜 먹은 나만의 의식이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혼자 시켜 먹었다. 강남 닭은 크기도 어쩜 실한 지 양이 꽤 많아서 더 큰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짜릿했다.(사흘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니까!)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날,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길 바라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살짝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반응하고 아파했던 날들. 혹여나 타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눈치 보며 나를 채근했던 날들. 모두 다 거름이 되어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 스스로가 잘 아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진부한 말이라 당연하게 생각해 왔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기’를 사소하게 시작하고 있다. 나를 위한 식사를 잘 차려먹고, 내 체형과 몸 상태에 맞는 운동으로 나를 가꾸며 가끔 예쁜 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낭만도 실천하고 있다.


 2023년의 봄엔 외부 활동보단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내실을 많이 다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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