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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r 01. 2023

이사를 했다.

 셰어하우스에서 나와 온전히 나의 공간이 생겼다. 20대 초반 취업준비로 짧게 서울 고시원생활을 한 경험이 있긴 한데(아직도 그때 얘기를 꺼내면 눈물이 먼저 나온다.) 이젠 진짜로 나의 집이 생겼다. 서울에 와서 너무 좋은 커뮤니티에서 좋은 사람들과 살을 부딪히며 생활했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혼자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사람이었고, 본가도 제주도다 보니 갔다오면 충전보단 방전될게 뻔했다. 작년보다 어느 정도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고 균형을 잡아가고 있으니 이젠 독립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친오빠의 순조로운 결혼과정(분명 나는 모르는 언니, 오빠만의 고충이 많았겠지만)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루어질 일이라면 큰 막힘없이 일이 척척 진행되는구나’라고 느꼈는데 이번 이사가 딱 그랬다. 이사를 결심한 시기에 친구의 소개로 괜찮은 집을 알게 됐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부동산들 사이.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너무 괜찮은 조건의 직거래였다. 전세대출도 친절한 은행 직원분 덕분에 최적의 금리를 찾아 잘 진행됐다. 이사 가는 날 용달 없이 혼자 모든 짐을 다 옮겨야해서 저녁에 코피날 뻔만 한 것 제외하곤 완벽했다. 짐 옮기다가 물건 하나 분명히 박살 낼 거란 가족들의 우려와 달리, 큰 사고 없이 어찌어찌 안전하게 이사를 잘 마쳤다.


  혼자 첫 자취라 걱정됐는지, 한달음에 달려온 엄마는 집을 보며 황당해했다. 보통 타지에서 생활하면 집에 생활용품도 거의 없고 잠만 잘 용도로만 사용한다는데, 나는 엄마가 섭섭할 정도로 살림을 잘해놨기 때문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작가님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결혼 적령기의 후배의 집에 갔는데 나중에 결혼하면 이사 갈 것을 생각해 물건을 최소한으로 들여놓고 마치 ’ 임시 거처‘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걸 보며 씁쓸했다는 내용. 그때 그 구절을 보면서 나는 언젠가 혼자 살게 되더라도 당장 여기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집다운 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에 진심인 나는 본가에서 원두 그라인더와 전기 포트를 다 가져와 작은 홈카페를 만들었고,  마침 공돈이 생겨 장만한 발뮤다 토스터와 가장 고가의 물건인 스타일러는 내 작은 원룸의 큰 자랑거리다. 말만 미니멀리스트를 꿈꿨지, 그 누구보다 맥시멀리스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 만족한다. 그리고 요 며칠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엄마는 우리 집에서 코까지 골며 꿀잠을 잤다.


  기상캐스터로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새벽 다섯 시 기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는, 일을 그만두고서도 이 습관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공간에 살짝 볼에 닿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따뜻한 커피를 내려마시고, 출근 전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자기 계발을 했던 찰나의 순간들. 그 당시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잘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한동안 이 부분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무기력해지도 하고, 잘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젠 온전히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리듬으로 그때 시간들을 다시 찾을 수 있단 생각에 설렜다.


 오늘 아침도 폭신폭신한 이불에서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토스터기에 빵을 굽고, 동네 카페에서 산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렸다. 유일하게 아는 재즈 피아니스트 ‘에디히긴스‘의 노래를 틀며 아침 식사를 했다. 예전보다 행복의 기준이 느슨해져서 그런지 연신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라며 혼잣말을 되내었다..(발뮤다 토스터기가 나의 삶의 질 상승템인 건 확실하다.) 모든 일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내가 이 삶에 또 언제 권태감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 안정감‘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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