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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n 28. 2023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좋아하는 것을 모두 업으로 삼을 순 없을까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던 나는, 남들이 다 해보는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이 안하는 것에도 기웃기웃 거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했던 별종이다. 아니 관종이라고 해야 맞겠다. 신기한 건 욕심이 있다보니 웬만한 건 어느 정도 잘 따라하는데 문제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이 것을 업으로 이어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나 괴테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은 한 분야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 후세에 이름을 떨쳤는데, 나는 모든 분야에 그냥 저냥 감만 익히고 있는 정도였다. 정말 소질이 없다고 느낀 건 일치감치 포기했을텐데 운동 말고는 그래도 남들하는데로 따라할 수 있는 정도다.(운동은 정말 소질이 없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n잡러의 생활을 했다. 평소엔 출근을 하고, 밤에는 스피치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종종 휴가를 내고 광고 촬영을 하거나 행사 사회, 프로그램 진행도 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더니 그래도 손을 조금 내밀었더니 포근하게 잡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한동안 바쁘게 지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떨 때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지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조금 더 선택과 집중을 위해 회사를 관두었다. 


 일을 그만두고 12주 정도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차곡차곡 쌓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내공을 다지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작성하며 생각의 실타래를 부지런히 풀어내고 있다. 그냥 머리 속에 부유하고 있는 온갖 잡념들을 노트에 다 퍼붓는 작업인데, '~ 하고 싶다'라는 말이 참 많다는 게 참  재미있다. 유튜브도 하고 싶고, 베이킹 클래스도 하고 싶고, 샌드위치 레시피 책도 만들어보고 싶다며 구구절절 써내려가면서 그래도 위안이 되는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이 그다지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즐겼던 모든 것들이 다 영감이 되고 자극이 되어간다.


 아빠는 나에게 '그래도 배움에 있어서 돈을 아끼지 않는 건 좋은 자세'라며 온갖 클래스란 클래스를 전전긍긍하던 나를 칭찬해주었다. 사실은 그 중 돈벌이가 될 만한게 뭐가 있을 지, 사냥감을 나서는 하이에나의 자세로임했던 건데 아빠의 눈엔 그저 미어캣 처럼 요리조리 눈만 굴리면서 맛배기로 만족하는 줄 알았나보다. 뭐가됐든 지금은 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취미란에 쓸만한 것들이 꽤나 많다. 단지 소개팅이나 면접 질문에서의 모범 답안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해줄 수 있는 아군이 되었다. 가끔씩 버거움이 느껴질 때, 내가 배우면서 즐거웠던 것들을 하나 둘 씩 꺼내어 도전해보면서 다시 힘을 얻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하고싶은게 너무 많았던, 줏대 없이 이것 저것 다 해보던 나였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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