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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Sep 10. 2023

왜 자꾸 주눅이 드는 걸까요?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최근 커뮤니케이션 1:1 코칭 의뢰가 들어왔다. 보통 '말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이번에 강의를 요청한 수강생은 이유가 조금 더 뾰족했다.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고 있어 평소 말하는 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지만 특정 상사와 대화를 할 때면 유난히 긴장되고 말도 버벅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쌓여 자신에게 몰아붙이는 말을 하게 되면 얼어붙게 되는데 이걸 고쳐보고 싶다고 하셨다.


 책이나 유튜브 영상에서도 화술이나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이 있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가능한 많이 말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늘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이번 수강생의 경우는 애초에 특정인과의 대화에서 벌어지는 고민이라 이 최선의 방법을 활용하기가 모호했다. 실제 상담할 때도 그간 수업을 진행했던 수강생과 달리 톤이나 어조가 굉장히 안정적이었고 대화가 유연하게 흘러간단 느낌을 받았는데 유독 한 사람 앞에서만 긴장한다고 하니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름 자료를 서치 하면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시간 배분과 실습 비중도 촘촘하게 계획해서 1:1이지만 만족하실 수 있도록 진행했다. 수업을 한 10분 정도 남겨놓고, 수강생분이 '잠깐만요'하고 손을 들며 들만했다.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들도 좋지만, 저는 강사님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요. 방송이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때 유독 긴장되는 순간이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궁금했거든요."


듣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과거 나는 어땠는지 잠깐 생각을 해봤다. 사실 방송을 꽤 길게 했지만 나도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대한 긴장보다는 그 너머로 있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긴장이었다. 그것도 다수의 대중이 아닌 내가 방송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몇몇의 방송국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듯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스튜디오를 지나 2층 부조와 주조에 CG그림을 전달해 주러 가는 그 길목에 많은 선배들을 마주친다.사람들은 내가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꽤나 표정이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한 사람이었고, 찰나의 느껴지는 차가운 태도와 무심한 표정들을 통해 나에 대한 불만을 피부로 느꼈다. '아 오늘도 내 욕을 했겠구나.' 그렇게 읽혀버린 나에 대한 불만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오고 나면 더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늘 그렇게 실수가 반복되었다.


  일을 하는 2-3년 동안은 이런 부담들을 잘 견뎌내지 못했던 것 같다. 자책하고 스스로를 채근하던 기간이 꽤나 길어졌었는데, 어느 순간 이 모든 게 '자의식 과잉'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마 나의 일상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시점과 맞물렸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정작 말을 내뱉은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말들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미성숙했던 나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사소한 말들 때문에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물론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엔 방송에 대한 열의가 사라지고, 서서히 일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너무도 잘 알지만 만약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사소한 비판들 때문에 또다시 기가 죽고, 눈치를 볼 것 같다. 그때 상황에선 정규직과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프리랜서 사이 이상한 상하관계에서 압도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 압도감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나는 꽤나 섬세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보다 사회생활 경험이 훨씬 많은 수강생 분께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차마 하지 못했지만 나 같은 경우엔 어떤 방식으로 긴장감이 도는 상황을 견뎌냈는지를 얘기해 줬다. 오히려 더 많이 그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담력을 키운다거나 마인드컨트롤 방법, 그리고 긴장한 티가 안 나게 하는 나만의 비밀 등을 말씀드렸더니 나름 흡족해하시면서 한번 적용해 보신다고 하셨다.


 물론 나 역시도 앞으로 새로운 일을 하면서 수많은 긴장과 갈등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압도감'의 실체가 결국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경험을 통해서 배웠기에 예전 보단 조금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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