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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Sep 23. 2023

괴테형 인간이 되고 싶어

일찍이 프로n잡러였던 괴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어릴 적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관련된 내용을 접했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화가'가 아닌 '과학자'로 소개됐었다. 시간이 흘러 미용실에서 읽은 잡지에선 과학자로 등장했다. 신기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직업'이라고 검색해 보니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공학자, 문학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등등 수많은 직업들이 나열되며 마지막엔 '다재다능한 천재였다.'고 적혀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재미있는 단어를 마주했다. 바로 '괴테형 인간'. 시인 '괴테'와 소설가 '괴테', 경제 전문가 '괴테'. 혹시나 싶어 풀네임과 생몰년을 확인해 보니 동일인물이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천재들은 한분야에만 머물기엔 아까운 인재라며 끄덕이면서도 이들이야 말로 '프로N잡러'가 아닐까 싶었다. 하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또 그마저 잘하다보니 오히려 살면서 무료함은 느끼지 않겠구나 싶다가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핑계로 몇 가지 일들을 내려놓았던 지난날에 내가 다소 부끄러워졌다.


한 때는 샌드위치가게를 열어보고 싶어 열심히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자본금이 부족하단 이유로 취미로 남기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비건 베이커리가 조금씩 인기를 탈 무렵, 제주에서 비건 베이커리 카페를 만들겠다며 서울을 오가며 배우다가도 '방송에 집중해야지'하라는 지나가던 선배의 말에 위축되며 취미 2로 남겨두었다. 자기 계발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며 영상 편집도 배워보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이건 취미 2.5 정도 즈음이 되었다. 그렇게 도전했던 것들은 많은데 오래 이어가지 못하다 보니 어느덧 취미부자가 되어있었다.


 프리랜서의 삶을 영위하면서 늘 일감에 대한 불안감을 달고 살았던 지라 바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빨리빨리 털어냈다. 물론 그 가시적인 성과의 척도는 '돈'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렇게 부족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뭐가 그리 조급했는지 당장의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거 수익화가 좀 힘들겠는데?'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 바로 떠났다. 선택에 있어 해파리마냥 흐물흐물거리는 내가 이상하게 이렇게 일적인 부분에 있어선 단칼같았다. 그렇게 단호한 결정을 내릴때마다 스스로를 도전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미련은 미처 놓고 오지 못했다는 걸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그런 인풋만 많고 아웃풋을 내지 못하는, 자기만족에서만 그치는 삶을 살다가 요즘 n잡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묵혀두었던 나의 장기들을 하나둘 씩 꺼내보고 있다. 실직 불안도 덜고, 재미도 채우고. 앞날은 정말 모르는 것이기에, 일단 두루두루 해보는 것이 든든하다. 무엇보다 혼자 지내는 삶이 조금은 더 명랑해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서다. 딱 하나만 정해서 사는 삶은 무료하기도 하고, 재미와 함께 약간의 수익이 붙을 수도 있다는 행복한 상상도 실행해보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기상캐스터를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나를 대표하는 수식어로 남아있다. 물론 나에게 있어 영광스러운 커리어이지만 나는 이 아름다웠던 과거의 직함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이를 뛰어넘을 멋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누군가가 나를 소개할 때, 기상캐스터가 아닌 '샌드위치 전문가', '작가', '커뮤니케이션 강사', '강대리' '카페 사장님' 혹은 또 다른 수식어를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해놓고 보면 이 중 하나는 나란 사람을 온전하게 포갤 수 있는 매력적인 수식어가 붙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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