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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Jun 04. 2016

마음이 따뜻한 사람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법..


나는 니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무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마.
조금은 어리석어야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거든.

                                            -연탄길/이철환


**

내 생각도 같아요.

그런데도 가끔씩은 일등이길 꿈꾸죠.

그 꿈을 향해 달리라고 채찍질하면서..

어떤 게 진짜 내 마음인 거죠??

마음이 따뜻한 사람

우리 강현이가 꼭 그렇게 되길..


**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분위기에 억압받지 않으며

그저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유롭게 건강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게 놔두고 싶다.

그게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

사랑하는 아들 강현아..

엄마 뱃속에서 처음 울러 퍼지는 네 심장 뛰는 소리에

울음이 북받쳐 올랐었지..

어린 시절 순간순간 네 모습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처럼

엄마 기억 속에 또렷이 찍혀 있단다.

13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중학생이 된

엄마 아들....

때때로 삐걱거리다가도

금세 웃으며 돌아오게 되는

너와의 탄탄한 끈이 있기에

그 끈은 언제나

너와 날 흔들리지 않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된다.

네 한결같은 인생철학 그대로,

나누며 사는 삶!  꼭 그렇게 살게 되길

힘껏 응원한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사랑한다 강현아~~


밀레의 <자비심 >- 문밖의 걸인에게 소녀와 엄마가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이철환의 <연탄길>의 한 글귀에서  깊은 공감을 얻고, 내 마음을 담아 이렇게  글들로 남긴 적이 있었다.




강현이는 지금 어떤 아이로 커가고 있는가?


두 번의 인공수정과 세 번의 시험관 시술의 실패로 내 인생에서 아기의 존재는 상상으로 조차도 희미해질 즈음, 네 번째 시험관 시술 끝에 기적처럼 강현이를 얻었다. 결혼 8년 7개월 만에 얻은 아이였다.


임신 초기엔 아기가 단단히 자궁 안에 안착하도록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소파를 두고 거의 꼼짝 않고 지냈다. 편안한 음악으로 내 귀와 아기의 귀를 채우고, 견과류들과 고단백 음식들로 아기의 두뇌 건강을 챙겼다. 배가 제법 불러왔을 때에는 배에 아빠의 손을 얹고 저음의 목소리로 어디서든 자주 책을 읽어주었다. 그럼 아기는 좋았는지 손과 발을 뻗어 내 배가 불룩불룩하도록 반응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후론 내 손엔 캠코더가 놓일 날이 없었다. 아기의 순간순간 행여 놓칠세라 죄다 동영상에 담았다. 내 눈에 아기의 모습은 너무나 완벽하게 예뻤고(자신의 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은 신뢰할 만하지 못함), 강현인 그렇게 의심할 것 없이 나의 보물 1호가 되었다.


테잎 분량을 늘이기위해 3배속으로 녹화하고, 비디오, CD로 옮기고 다시 테잎을 재사용했었다.


강현인 채 2개월도 되기 전부터 유난히 웃음이 많은 아가였다. 장롱의 미키 그림을 보여주며 까꿍 놀이를 하면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대고 웃었다. 4~5개월 즈음 뽀(텔레토비중 빨간 친구) 튜브를 보여주었을 때도 그랬다.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면 유난히 집중하며 좋아했었는데.. 예방접종을 할 때나 머리를 자를 때, 교회 예배시간에 아기를 조용히 시켜야 할 때는 늘 강현이 귀에 대고 <Ugly little dock>과 <The shepherd boy and the wolf>등의 스토리를 속삭여 주었다. 그럼 강현이는 100%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절대 칭얼대거나 우는 일이 없었다. 위협적인 차림새를 하고 다가오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본능적으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니, 호랑이보다 더 효과를 발휘했던 곶감과 같은 기적으로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니까 의사 선생님이 궁금해하며 무엇을 속삭이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비교적 긴 동화였는데 덕분에 영어 동화 몇 권을 줄줄 외우는 엄마가 되었다.


엘모 영어동화에 집중하는 5개월의 강현이

음악에 대한 감수성도 좋아서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을 켜면 집중해서 듣다가 음악을 끄면 울고 다시 켜면 듣다가 끄면 울기를 반복하였다. 장난 삼아 좀 늦게 켜주면 숨이 넘어가라 울다가도 다시 켜주면 어느새 뚝 그치는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말문이 트일 무렵 (기록이 분실되어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분실된 테입이 17개월분이므로 그쯤으로 추정됨..ㅎ) 50여 장의 동식물과 자연물 영단어 카드를 줄줄 외우면서 나열하던 모습은 지금 떠올려 보아도 신기하다.


강현이가 좋아했던 영단어 카드들..

이렇게 강현이는 늘 예쁘게 잘 웃고 얼마만큼은 영특한 아이로 영유아기 때를 잘 보내왔던 거 같다.




강현이 6학년 때, 시댁 부모님을 모시고 무창포로 여행을 갔었다.


평소 어머님께서는 말씀도 잘하시고 사교적이시고 빼어난 멋쟁이신 반면 아버님께서는 노인성 치매를 앓고 계셔서 말 수가 거의 없으셨고 수수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아 움직임이 느리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들은 어머님 중심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아버님과는 형식에 가까운 안부 정도를 여쭈는 정도였다.


길이 많이 막힌 탓에 늦은 시간에 무창포에 도착하여 숙소에서 여정을 풀고, 다음 날 대천으로 와서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별생각 없이 어머님과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 걷다가  걸음이 늦으신 아버님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뒤돌아보니 멀찌감치 떨어져 강현이가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에스코트를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전에 가족들과 함께 고모부 음악회에 갔었을 때도 강현인 누가 시키지 않아도 걸음이 늦어 뒤처지시는 할아버지와 보조를 맞춰 걸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미쳐 마음 쓰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웠었다.


할아버지 손을 꼬옥 깍지 끼고 에스코트하는 강현이

아버님은 걸음이 불편하셔서 바닷가까지 미쳐 동행하지 못하고 해변 입구에서 쉬시고, 우린 넓은 대천 바다의 늦은 봄바람을 쐬며 평소 유독 다정한 남편과 어머님과 함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강현이는 말없이 모래사장 위에 커다랗게 하트를 그리고 그 안에 이런 메시지를 써넣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사세요"


모래사장 위에 묵묵히 써놓은 강현이의 마음


아버님께서는 그 이듬해인 작년 가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강현이의 바람을 뒤로하시고 갑작스럽게 너무도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강현인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슬픔마저도 사치 인양 눈물도 못 흘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장례 직후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들고..


의젓하게 종손의 책임을 다하여 상을 치르고 처음 할아버지 댁에 방문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늘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곳을 향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하면서 현관을 들어섰다.


밤에 잠자리에서는 할아버지 냄새가 맡고 싶다며 할아버지 파자마를 달래서 입고 잤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어렵게 얻은 귀한 손주(유일무이한 친손주)에 대한 사랑은 당신의 눈빛 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유독 강현이를 바라보실 때에는 그 묵뚝뚝한 입가에도 여리게 미소가 번지셨고, 학교 잘 다니냐는 간단한 안부를 물으시며 마른 목청을 트시기도 하셨다.


그립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ㅠ




강현이는 분명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강현이의 꿈은 언제 물어도 베푸며 사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

이에 비하면 난 내 아이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강현이의 장래희망


마음은 늘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

이라는 박노해의 생각과 같이 하면서, 실상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행복해지는 법을 다시 또다시 공부하고 명심해야겠다.



잠자는 모습이 엄마 눈엔 늘 천사같았던 예쁜 강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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