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로의 일상 속으로 8

엄마와 함께 겨울나기 중

by 강서희


24. 12. 27 fri

엄마 정기검진과 피검사가 있는 날이라 희망 네 바퀴 이용해서 노인병원에 다녀왔어요.

아침에 일어나 말끔히 머리 빗긴 후 얼굴을 감싸고 눈 맞추며 굿모닝~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웃으시며 굿모닝~ 하고 답하시네요 ㅎ 아침마다 자주 인사를 건넸더니 감으로 이해하셨나 봐요. 너무 귀여우셨어요.

병원 검진을 끝내고 다시 희망 네 바퀴를 콜 하고 기다리는 동안 어르신들 작품들을 둘러보는데 엄마께서 이것저것 만져 보시고 책도 꺼내 보시는데 그 책 제목이 '엄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여서 또 한 번 웃었네요.(울 엄마도 애기가 되셔서 많은 기억이 지워지셨죠)

마침 산타룩으로 입으셔서 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는데 장식구슬에도 호기심을 보이시네요. 사랑스러우신 울 엄마 이대로만 건강하셔도 너무 감사해요




24. 12. 26 thu

엄마 사고 이후 일상이 바쁘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생각할 시간도 책 읽을 시간도 없어 일기 소재도 빈곤하네요.

오늘은 남편이 새 등산스틱과 등산화를 사고 싶대서 집 오자마자 4시간을 인터넷몰 써칭하는데 다 써 버리고 다시 엄마한테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스틱은 주문했지만 등산화는 결국 선택을 못해 시간 내어 매장에 가보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하루가 또 날아가겠죠. (이 세상에서 쇼핑이 젤 싫은 1인)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도 행복하지만 혼자 여유롭게 책 읽고 사색하던 때가 그립고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 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 문요한


그런데 게으름도 시간이 있어야 피울 수 있는 사치라는 걸 새삼 깨닫네요.




24. 12.22

올케가 전복죽과 맛있는 반찬들을 해서 막내와 함께 인사 온단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동생과 대청소하고 나니 정갈하게 정돈된 집안이 더욱 기분을 밝게 해 준다.

잠깐 여유가 생겨 류시화가 엮은 법정스님 잠언집(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을 펼쳤다. 주옥같은 글들 중 짧은 시 하나를 소개한다.


*유서를 쓰듯이*

혼자서 살아온 사람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남은 세월이 다할 때까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늙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면
그 인생이 초라하게 마련이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가꾸고 관리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화사한 봄의 꽃도 좋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피는
국화의 향기는 그 어느 꽃보다도 귀하다.

자기 관리를 위해 내 삶이
새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유서를 남기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읽히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삶의 진실을 담고 싶다.


우리 팸분들 모두 아름답게 익어갑시다 ♡
사진은 동생이 오래전에 그림 배울 때 그렸던 습작입니다~^^




24. 12. 21

어제 엄마 물리치료받는데 생각보다 탈골됐던 팔을 잘 올리셔서 놀랐어요. 집에 와서 용기를 내서 화장실도 모셔가고 잠도 침대에서 잘 주무셨어요.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사고 17일 만에 드디어 와식 생활을 접고 휠체어와 침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당신 침대에서 주무시니 기분이 좋다고 대답하시네요. 엄마는 양손잡이셔서 좀 서툴긴 하지만 식사도 식탁에서 왼손으로 혼자 잘 드셨어요.

다친 오른손은 여전히 신경이 둔해 못 움직이시지만 꾸준히 집에서 찜질과 재활운동 열심히 시키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어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남편은 동창 송년모임에 가서 오늘은 집에도 안 들르고 동생네서 엄마랑 주말을 잘 보내고 있어요.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보려고요. '미안해요 리키' 볼 겁니다^^

동생이랑 잠깐 장 보러 나갔다 왔는데 많이 쌀쌀하네요. 감기조심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엄마네 창밖 노을이 참 아름답네요.




24. 12. 20

엄마 병원진료 와있어요. 장애진단 통과돼서 희망 네 바퀴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정부지원 되어 병원까지 기본료 1500원으로 편하게 왔어요. 휠체어 탄 채로 이동하는 거라 너무 편해요. 지난번엔 사설 앰뷸런스를 이용했는데 비용도 많이 비싸지만 일단 너무 불편했어요.

오전 근전도랑 신경 검사 끝나고 오후 정형외과진료 대기 중입니다. 엄만 휠체어 앉은 채 곤히 잠드셨어요.

힘든 일을 겪고 있지만 동생과 둘이 하니까 의지도 많이 되고 지금까지는 그다지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하고 있어요.

ㅎㅎ 오늘 새벽엔 엄마가 누운 채로 어떻게 움직이셨는지 기저귀를 다 풀고 요 밖으로 빠져나와서 거실바닥에 소변을 보시는 바람에 7시부터 이불 빨래 돌리고 몸 닦이느라 소동이 있었어요. 아마도 혼자 화장실 가시려는 의지가 있었던 거 같아요. 이리저리 엄마를 돌리며 닦을 땐 평소엔 아프다고 엄살을 엄청 피우시는데 웬일로 조용히 손으로 입 가리고 계시길래 "엄마 왜 이렇게 조용해? 반떵하는거야?" 하고 물었더니 "응 반성하는 거야"라고 대답하셔서 한바탕 웃었어요.

엄마랑 동생 유머 케미가 잘 맞아서 웃을 일이 많아요.




24.12.18

오늘도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시간이 많았을 땐 그 소중함이 덜 했었습니다.

전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따뜻한 햇살이 넓은 거실창으로 쏟아져 내리고,
라디오에서는 늘 듣는 채널에 고정된 채로
연이어 평온한 음악을 선물합니다.

문재규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선물'이라는 시에 멈추고 한 번 더 감상합니다.


ㆍ선물ㆍ

해맑은 눈빛
순수로 아름답게

펼쳐진 무지개
안고 가거라

길지 않고 짧은 길
사랑만도 부족하다

너그럽게 수그리며
정성껏 내밀어

다시 보고플
그리움을 남겨라

가방 속 열어 보니
줄 건 이것뿐.


'다시 보고플 그리움을 남겨라'

예전에도 여기서 오래 머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보고플 그리움을 남기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 번 더 고민해 보는 오후입니다.




24. 12.14

역사의 순간입니다.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민주시민들의 모습이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뜨거운 가슴이 다시 하나로 모였습니다.


귀여운 울 엄마도 옆에 앉아 같이 탄핵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윤석열, 김건희 천벌 받게 해 주세요."


ㅎㅎ 저희가 시키는 대로 또박또박 말씀도 잘하시네요.


동생 기타반 샘도 시청 앞에서 탄핵 시위 버스킹을 해서 동생이 잠깐 다녀왔어요. 시장님이 함께 나오셔서 응원해주시며 끝까지 참가하셨다고 하네요.


역사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강건하게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입니다. 윤석열 탄핵 염원을 담아 절박한 심정으로 오늘 일기를 남깁니다.




24.12. 13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리다고 주장할 때 다툼이 생긴다. 상대를 끝까지 이기려 들 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다툼이 불같이 크게 번지기도 한다. 이때 나를 다스릴 줄 모르면 그 관계는 끝내 금이 가고 말 것이다.

오늘 아침 좌선 명상은 이럴 때 꼭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다시 한번 새기며 나를 다져본다.

ㆍ간추려 옮김ㆍ

자기를 이기는 것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낫다.

세상을 이기려는 집착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내면의 고요를 찾는 것이 더 큰 승리이다. 세상을 이기려는 싸움은 바다를 손으로 움켜쥐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이긴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를 이긴다는 것은 내면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심, 두려움, 분노와 같은 내면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분노를 사랑으로 이기고
악을 선으로 이기며
탐욕을 나눔으로 이기고
거짓은 진실로 이겨라'

내면의 적을 이기는 것은
강한 의지와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자기 자신의 약점과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다.




24.12. 12

헨델곡을 들으며 산책 중입니다. 평소 헨델곡을 자주 듣는 건 아닌데 오늘은 헨델의 Ombra Mai Fu를 부르는 남성 테너 가수의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감기네요.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나의 사랑스러운 플라타너스
아름답고 부드러운
무성한 잎이여
그대를 위하여
운명은 반짝인다'

가사를 보면 여름인 듯한데 겨울숲 오솔길에 어쩜 이리 잘 녹아들까요.

흰 눈이 펄펄 나리는 어느 창가가 연상됩니다. 한쪽에선 성탄 트리 전구가 점멸하고 있고, 그 옆으로 벽난로 속 장작이 타닥타닥 불꽃을 튀며 타오르고 있네요.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대를 위하여
운명은 반짝인다'

오늘 부당한 대법원 판결을 받은 한 가족의 운명에
이 곡을 바치며 응원을 보냅니다.




('히로인스'라는 운동앱에 올린 일기글을 추려서 5~7편씩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기에서 지칭하는 히팸은 히로인스 가족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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