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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Jul 21. 2016

여인의  성(城)

가을을 맞은 생의 뒤안길..


<소녀의 성()>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 이후로 15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그녀가 정말 좋아했다던 네 번째 성(城)에선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13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만큼 그 성의 창가엔  많은 이야기들이 어려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 얼핏 쉽게 떠오르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넓은 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다란 무지개를 남편과 아이와 함께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꿈결처럼 아련하다. 비록 날이 흐려 허리 부분이 가냘프게 이어진 듯 끊긴 듯 하였어도..


어느 날 꿈에서 무지개가 하늘 위에 떠 있었다. 일곱 색색의 경계선이 또렷한게 마치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 같은 무지개였다. 그녀는 신기해서 망원경으로 창밖을 둘러보는데, 동그란 두 렌즈 안에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두렁을 산책하시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줌으로 잡힌다. 꿈이 너무 생생하기도 했지만 그 맘 때는 평소 그다지 부모님을 염두에 두지 않던 때여서 더 진하게 여운이 남았던 꿈이다.


논두렁을 조깅하다가 여인의 성 앞을 지날 때면 9층이었던 아파트 창을 향해 목청껏 여인의 이름 석 자를 연거푸 외치거나 전화를 걸어 성 안의 여인을 창가로 불러내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뛰곤 했던 남편의 모.


어느 겨울날  평소와 같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창밖을 보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고개를 돌리니 꿈같은 함박눈이 그녀의 넓은 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인은 그 날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다. 참 행복하다고.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어느 날에 다섯 살 된 귀여운 아들과 아빠가 눈을 뭉쳐 서로 던지고 받는 모습도 그녀가 창을 통해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던 모습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새록새록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하여튼 이런 이야기들이 얼핏 생각나는 창가에 어린 기억들이다.

 


창 앞에 끝없이 펼쳐진 논밭이 계절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항상 큰 감동이었다.


여름 내내 위풍당당하게 푸르름을 뿜어 내다가 가을녁엔 바람에 넘실대는 황금물결의 장관을 이뤄내고, 찬바람이 불면 그 찬란했던 모습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겸허히 결실을 맺는다.


추수를 마치고 나면 드디어 그 위대하고 비밀스러운 대지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 모습은 지난 여름 가을의 찬란함과 견줄 수 없는 또 다른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사뭇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기'의 배경이 연상되기도 한다. 결코 을씨년스럽지도  초라하지도 않다. 여름 가을 동안 뿜어 내던  아름다운 장관의 근원인 것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가 연상되는 가을 들녘


대지의 위대한 창조의 힘은 어머니의 잉태와  희생을 토대로 한 양육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백발과 주름진 모습이 초라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저 빈 들녘도 결코 초라하지가 않다. 오히려 더욱 장엄하고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네 번째 성에서 그녀도 고대했던 어머니가 되었다. 위대한지는 모르겠지만..


빈 들녘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으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여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경계선이 히미해 진다.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경관이 눈앞에 펼쳐 진다.


이렇게 그녀의 네 번째의 성은 축복이 내린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앨범에서 꺼내 본 네 번째 성의 창밖 풍경, 바로 저 한가운데 논두렁에서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가 꿈속에서 다정히 산책을 하고 계셨다.



 중년 후반에 접어든 여인은 이제 다섯 번째의 성 ()을 맞아 살아가고 있다.


여인은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거나 빗줄기가 창을 두드리는 날에, 또는 한겨울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올 때에도 차 한 잔을 타서 창 앞에 자리한다.

눈이면 눈이라서, 비면 비라서, 또 맑은 햇살이면 햇살이라서 좋다. 그 무엇이든 간에 하늘이 주는 특별한 선물 같다.


예전만큼 감탄할 조망은 아니지만 여전히 거실 창 앞은 막힘 없이 잘 트여 있고, 정갈하게 단정한 단지 내 정원 내려다보는 이나 멀리 단아한 동네의 풍경과 산등성을 조망하는 것다. 


창가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다.



소녀의 방 창가에 서서, 창 밖에 을씨년스럽게 나뒹구는 등나무 잎들을 바라보며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 되는 거야"<소녀의 성()>


하고 혼잣말을 하시던 소녀의 어머니의 나이가 쉰다섯이셨다. 그때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던 그 소녀는 이제 쉰이 넘어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인은 이렇게 반평생이란 오랜 세월을 굴곡 없이 잘 살아오고 있다.


쉰이 넘으니 한 가지  달라지는 것은 노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일이다. 머물 거 같았던 시간들이 세월 뒤편으로 물러가고, 어느 날  꿈속에서 보았다던 소녀의 부모가 이제 자식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세가 되신 것이다.


이제껏 두 분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오늘의 그녀가 있게 했으니 이젠 그녀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릴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후회 없이 돌려 드리고 싶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어 아직 한참을 더 키울 일이 남아 있지만 아이에게 쏟을 정성의 반을 고스란히 부모에게 다 하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여인은 그녀의 다섯 번째 성()에서 노쇠하신 부모님을 보살피며, 또 아직은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며 예전보다는 좀 더 분주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현재의 성

  


*관련글 - 소녀의 성(城)

https://brunch.co.kr/@seoheek/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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