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엄마가 계셨던 병원의 봄은 찬란했다.
2013년 겨울, 갑작스런 병으로 일체 거동을 못하시게 된 엄마를 노인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잃으신 건강만큼 표정도 잃으시고 말수도 없어지고 기쁨도 행복도 다 거둬간듯 했다.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다 잃는 것과 같다더니 그 말이 실감이 되었다.
병원 가까이 사는 나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던 때였다.
병원 옥상엔 '하늘 정원'이라는 정원이 있었다.
처음 그 곳을 찾아 갔을 땐 겨울이었다. 유리집으로 꾸며진 정원 내부엔 정겨운 석탄 난로가 안전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안엔 장작들이 타고 있었다. 한켠에 세워 있는 커다란 전기 온풍기도 큰 소음을 내며 답답한 온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두 개의 난로는 겨울의 한기를 충분히 덥혀 주었고 그 덕분인지 빼곡히 들어선 화분에는 때아닌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겨울 정원에 방문객이 들어서자 새장의 예쁜 새들은 우릴 반기듯 목청 높혀 재잘거렸다.
휠체어를 서서히 밀며 낯선 정원을 둘러보았다. 중간 유리문 안쪽엔 또 다른 실내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유리문 안쪽에서 우릴 반겨주었다. 엄마의 눈빛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개를 좋아 하시는 엄마의 두 동공이 크게 반응 하셨을게 분명했다. 유리문을 살며시 열자 순해보이는 흰 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엄마 곁에 섰다. 엄마는 손을 내밀어 다가온 개를 쓰다듬으셨다.
큰 기대없이 들렀는데 이 정원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그후론 병원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간혹 우리처럼 우연히 찾아와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의외로 이 아름다운 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봄이 되자 병원 곳곳은 꽃으로 생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느 곳을 가든 생생한 생화가 윤기를 가득 머금고 활짝 피어 있었다. 홀린듯 그 모습에 빠져 연신 셧터를 터뜨려가며 카메라에 담았다. 지금껏 살면서 꽃들에게 이렇게 마음을 빼앗겨 보긴 처음이었다.
'하늘정원'은 하늘과 가까워서 붙여진 이름이겠지만, 난 한껏 자태를 뽑내고 있는 이름 모를 이 꽃들의 모습이 마치 하늘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해서 '하늘정원'이란 이름이 꼭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릴적 아들에게 읽어 주었던 동화책 '리디아의 정원'이 연상 되는 그런 정원의 모습이었다.
가끔씩 뵐 때마다 부지런히도 일을 하고 계시는 정원사님께 행여 방해가 될까 조심스레 꽃들의 이름을 물으니 다행히 너무나 반갑게 대답해 주신다.
매발톱꽃, 천사의 나팔, 하와이무궁화, 스파트필름, 부겐빌레아, 칼라데아, 제라늄, 덴드론, 란타나 등등..
이런 생소한 꽃들의 이름을 다 알고 계시는게 의외이기도 했지만,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하니 정확하게 다 맞는 것에 한번 더 놀라웠다.
엄마는 예쁘게핀 봉선화를 보시더니 갑자기 봉선화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시기 시작했다. 평소 노래를 부르시지 않아 더 큰 감동이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진한 치자꽃 향기도 무디어가는 엄마의 감성을 두들겼으리라..
야외 옥상에 흐드러지게 핀 요 귀엽고 예쁜 꽃들은 또 이름이 뭘까?
병원 입구를 수놓은 양귀비 밭과 접시꽃들, 이름 모를 진분홍색 꽃나무와 쩔쭉들..
병원 곳곳에는 만개한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신의 창조와 같은 일을 일구어내신 정원사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흡족하셨을까?
신의 꽃으로 내 맘을 이리 흔들어 놓으시고 정작 본인은 야무진 체구와 얼굴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시다가, 관심있게 다가가는 모녀에게 잔잔한 미소와 작은 목소리로 응대하시는 정도로만 마음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정원사님이 오늘 저녁 문득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어쩜 당연한 건지도..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는가?
2014년, 엄마가 계신 노인병원의 봄은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사님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에 참을 수 없이 찬란했었다.
언젠가 외래진료차 들렀을 때, 정원사님은 병원 카운터에서 커다란 금붕어들이 살고 있는 돌 어항을 청소하고 계셨죠. 엄마께서는 병원에 들를 때마다, 탐스런 꽃들 만큼이나 멋진 금붕어들을 꼭 한번씩 들여다 보고 싶어하셔요. 병원 밖에서 양귀비 밭을 돌보시는 모습도 우연히 뵈었구요. 정원사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그렇게 병원이 예뻤던 거였어요.
여전히 병원 곳곳을 다니시며 쉼없이 가꾸는 일에 정성을 다하시는 정원사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덕분에 병원의 어르신들은 좀 더 행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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