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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Apr 08. 2018

파도가 지나간 자리

러브레터 - "네, 천 번도 더 대답할게요."

파도가 지나간 자리 -

The Light Between Oceans(2016)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내 경우는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배우를 쫒아 관련 콘텐츠를 써치해서 영화를 선택하곤 하는데, 그렇게 해서 선택한 영화는 실패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좋은 영화를 찾아내는 노하우가 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내면의 심리를 잘 그려내는 배우는 어느 영화에서든 그 재능이 발휘된다.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의 다양한 매력보고 싶어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도 그렇게  만나게 된 영화이다.


영화 <더 헌트>에서 매즈 미켈슨의 절제된 내면 연기에 매료되어 고전 영화 <로얄 어페어>를 선택해 보게 되었고, 덕분에 최고의 수작을 만났다.


영화 <로얄 어페어>의 매즈 미켈슨과 알라시아 비칸데르


<로얄 어페어>에서 매즈 미켈슨의 열연은 기대했던 바대로였다. 그런데 상대역이었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청순한 미모와 깊이있는 연기 또한 돋보였다. 그녀의 매력을 쫒아 찾아낸 영화가 바로 <파도가 지나간 자리>것이다. 


이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인작가 M.L 스테드먼의 데뷔 소설 <바다 사이 등대>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원제 'The Light Between Oceans'도 좋지만  '파도가 지나간 자리'란 제목영화 내용과  잘 어울어지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원제의 번역이 어색해서 그런가 난 오히려 '파도가 지나간 자리'가 더 맘에 와 닿기도 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두 주인공의 차분하면서도 차밍한 분위기에 빠르게 매료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혹독한 트라우마를 격은 참전용사(영화에선 줄곧 전쟁영웅으로 칭한다) 톰이 세상과 떨어져 지내고 싶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야누스 섬(야누스 록)에 등대지기를 자원하게 되고,

야누스 록의 등대

관할 항구마을의 관리소장 부부로부터 저녁식사에 초대되는데..

그 자리에서 소개받은 이자벨은 이렇게 마을을 찾 톰에게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된다.


톰과 이자벨의 첫 데이트  


겨우 두 번 본 남자에게 등대가 있는 야누스에 데려가 달라는 이자벨의 돌발적인 발언에 톰은 어이없는 웃음으로 답하는데..


이자벨 - "바라는게 뭐에요?"  톰- "삶, 전 그거면 되요"
"야누스로 데려가줘요"


"야누스로 데려가 줘요 "

-가벼운 헛웃음

"왜요?
구경하고 싶어요.
당신이 숨어있는 곳을 보고 싶다구요"

"데려가는 건 규정 위반이에요
등대지기의 아내만 데려갈 수 있죠"

"그럼 나랑 결혼해요"

-어이없는 헛웃음

"왜 웃어요?"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니 못 말리는 바보군요..
그만 돌아가죠.
가족들이 군대 풀어 잡으러 오기 전에.."

"편지할 거죠?"

"물론이죠"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편지가 오가게 되, 둘은 바람대로 결혼하여 야누스 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된다.


톰과 이자벨의 결혼식


편지를 쓰고 읽는 두 사람의 모습과 생활이 오버랩되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낭독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으로 나를 사로잡은 장면이다. 차분하게 마음을 써 내려간 톰의 편지는그 어떤 열정적인 글 보다 더 설레게 했다.



이자벨에게


매일 낮 그리고 매일 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그 부두에 서있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당신의 말을 생각해보니

당신이 옳더군요.


나는 너무 오래 죽음에 둘러싸여 있어서

무감각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누스로 온 것 같아요.


이곳에선 아무도 해칠 수 없고

오로지 등대만 책임지면 되니까.

세상에 대한 미련도 모두 사라져 가요.


그런데 생기 넘치는 당신의 존재가

날 두렵게 합니다.


나의 어두움으로 그늘지게 하기엔

너무나도 밝은 영혼이죠.


그렇지만 당신 생각이 멈춰지질 않습니다.

당신 덕에 다시금 감정을 느끼게 되었어요.


당신께 감사합니다.

영원히 고마움을 간직하겠습니다.


당신의 톰이




톰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편지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마음을 열어줘서 고마워요.


힘든 일이란 거 알아요.

나도 상실의 아픔을 잘 알아요.

하지만 우린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여전히 당신 마음속엔 등대가 하나 있어요.

내가 봤어요.

그곳 하늘의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등대.




이자벨,

난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에요.

내 감정을 털어놔도 괜찮단 걸 몰랐죠.


이제는 말할게요.


내 섬과 내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내게 와 준다면

평생 보살펴 줄게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좋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나만큼 야누스가 맘에 들길 바래요.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야누스 록


톰,

처음 본 순간부터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그 후로 당신과 함께할 나날을 꿈꿨죠.

함께 가정을 꾸릴 나날들.

과거의 고통에서 해방될 나날들.


청혼했던 내 마음이 그대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네'예요.

네, 천 번도 더 대답할게요.



얼마나 상대에 대한 확신이 서면, "예스"라고 천 번도 더 대답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6년에 상영된 이 영화의 인연으로 톰역의 '마이클 패스벤더'와 이자벨역의 '알리시비칸데르'는 이듬해 2017년 10월, 실제로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연기가 더 실감 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2017년,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와의 결혼


이 영화는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로맨스는 아니다. 그들의 사랑을 시기하듯 결혼 후 바로 맞닥뜨리게 되는 혹독한 운명의 그림자가 야누스에 불어 닥치는 폭풍우처럼 둘의 삶에 덮쳐오는데..

두 배우의 절절한 연기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만삭의 아기를 둘 이나 잃게 되는 톰과 이자벨..


이 영화의 감독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블루 발렌타인>의 데릭 시엔프렌스 감독이라니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결혼후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이전의 행복한 한때


나머지 이야기는 관심이 간다면 영화를 직접 보면 좋을 것이다. 난 다만 내 브런치에 이 설레는 두 사람의 모습과 그들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글을 남기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톰이 모든 죄를 덮어 쓰고 아내 이자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이자벨, 내사랑


더는 견딜 자신이 없었

그런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기가.

이렇게 아프게해서 정말 미안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의 기회를 만나.

내 일생의 기회가 이렇게 끝나더라도

가치있던 삶이었어.


난 오래전에 죽었어야할 사람이야

 삶이 끝났다 생각했을 

당신을 만났고,

당신에게 사랑을 받았어.


100년을 더 산다해도

그보다 큰 사랑을 받을 순 없겠지.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했어

말로 못할 만큼.


당신은 내게 과분한 사람이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신과 당신에게 용서를 비는 뿐이야.


함께 보냈던 나날에 감사해.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으로 남을 거야.


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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