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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Sep 04. 2018

자전거 탄 소년 The kid with a bike

 아빠가 곁에 있어만 주어도..


지난밤 거센 폭우가 내린 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열어놓은 창을 통해 여름 막바지 매미소리와 함께 밀려 들어오고 있다. 왠지 몸이 무거운 날이 있다. 잡다한 기분을 돌리는 데는 영화만한 것이 없다. 소파에 기대어 쌉싸롬한 커피 한 잔 홀짝이며 얼마 전 찜해 놓았던 영화를 다운 받아 보았다.


다르덴 형제(장 피에르 &뤽 다르덴) 감독의 <자전거 탄 소>이다. 2011, 벨기에와 프랑스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수작이기도 하다.


다르덴 작품으로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란 영화를 인상 깊게 봤었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를 좋아해서 보게 된 영화였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산드라역의 마리옹 꼬띠아르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산드라는, 부당한 직장 해고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동료들에게 어렵게 도움을 청하러 다니는데, 그 모습이 참 힘겹고 처절하다. 치열하고 냉혹한 생존경쟁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동료들의 훈훈한 인간미가 내 맘에 훈김을 불어넣어 주었다. 난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영화가 좋다. 그래서 다르덴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자전거 탄 소년>선택 성공이었다. 시나리오와 연출, 연기, 순간 잠깐씩 흐르는 음악까지 완벽하게 좋았다. 특히 11살 소년, 시릴역을 맡은 토마 도레의 섬세한 감정연기와 연출이 대단했다. 극 중 토마의 모습은 온전히 역할 속 시릴 그 자신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토마 도레가 시릴역을 위해 다르덴 감독이 공모를 통해 뽑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소년(13)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쟁자 속에서 완벽한 시릴을 찾아낸 다르덴 감독의 예리한 판단력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릴역의 토마 도레 (Thomas Doret 13)


장 피에르 다르덴(좌)과  뤽 다르덴(우)


한 달만 있으면 데려오겠다는 아빠의 말을 믿고 보육원에 있게 된 시릴이 아빠부터 버림을 게 된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린 소년이 겪는 련과 상처들을 지켜보며 뭉클한 연민이 일었다.


결번으로 나오는 아빠의 전화에도 계속 연결을 시도하는 시릴의 간절한 모습을 담은 오프닝 씬이 인상적이다.


연락이 끊긴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도망 나온 시릴은 자신을 잡으러 온 보육원 남자 두 명을 뿌리치며 무작정 옆에 있는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매달린다. 그녀가 후에 시릴의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는 사만다이다. 시릴의 거친 행동이 아닌 아이의 속마음을 보고 보듬어 안아주는 사만다의 따뜻한 태도는, 보통 이런 아이들에게 보내지기 쉬운 냉정하고 왜곡된 시선을 반성케 한다. 시릴이 사만다를 만난 것은 웬만한 부족한 부모를 갖는 것보다 훨씬 큰 행운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쫒기던 낯선 아이가 갑자기 꽉 잡고 매달리는데 "잡아도 되는데 조금만 살살 잡아줄래?" 라고 말하는 사만다.


모르는 아줌마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주고 돌아가자 뒤쫓아가서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길 청한다. 시릴은 그렇게 당돌하고 영악하기도 하다.


그냥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자전거를 아빠가 팔아버린 거란 사실을 알고 크게 상심하게 되는 시릴과, 참을성있게 시릴의 마음을 두들기는 사만다.


  "왜 그러는거니?"   "아빠 보고 싶어요" ...     "따뜻해요"   "뭐가?"   "입김이요.."  온정을 그리워하는 시릴.


사만다의 도움으로 수소문 끝에 어렵게 아빠를 만나지만 아빠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리던 아빠를 만난 시릴은 잔뜩 찌푸리고 다니던 표정부터가 순하게 달라진다. 그렇게 소중히 하던 자전거를 아빠가 팔았다고 하는데도 괜찮다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바쁘다며 그만 가라는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말을 걸어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리던 아빠를 만난 시릴은 잔뜩 찌푸리고 다니던 표정부터가 순하게 달라진다.


그저 아빠가 곁에 있어만 주어도 바랄 게 없는 시릴이지만 아빠는 이미 마음이 닫혀있다. 아이 앞에서 굳게  닫아버리는 문이 아빠의 냉혹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그 충격과 상실감에 한동안 우두커니 말이 없던 시릴이 마침내 자학까지 하고 만다. 사만다에게 꼭 안겨 울먹이는 시릴의 작은 등이 계속 흔들렸다.


 다신 오지 말라며 아들 앞에서 굳게 문을 닫아버리는 아빠! 그 충격과 상실감에 시릴은 자학까지 하고만다.


사만다에게 크게 잘못을 한후 사과하는 시릴..  항상 따뜻하게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는 시릴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한다.



뜻하지 않은 큰 일들을 겪으면서 지친 몸과 맘을 추스르고 넘어진 자전거를 다시 세워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시릴의  뒷모습에서, 깊은 연민과 함께 반대로 무거운 짐을 덜어 낸 듯 홀가분함도 함께 느껴졌다.


범행에 연루되어 피해자에게 쫒기던 시릴이 도망치며 오른 나무에서 떨어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채로 쓸어진 자전거를 세워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며 흐르는 곡이 그 감동의 여운을 이어갔다. 시릴이 상심할 때마다 잠깐씩 흘렀던 그 음악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 2악장이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음악은 소년의 상실감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영화의 진한 여운은 곡보다는 상처 입은 어린 소년의 심정에 더 집중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엔딩을 포함해 딱 네 번 흐르는데, 그것도 앞에 세 번은 시릴이 크게 상심할 때 잠깐 짧게 흘러나오고 침묵이 이어진다. 아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데는 절제된 음악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감독의 선곡 하나에도 세심한 감각이 엿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면서는 무겁고 낮게 흐르던 음악이 다소 가벼운 피아노 선율로 이어지는데, 이는 마치 시릴의 새로운 인생 서막의 희망적인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다음 사진은 음악이 흐르는 네 개의 씬이다


 첫 번째 씬 -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에서 도망치다 잡히는 절망적인 순간


두 번째 씬 - 힘겹게 아빠를 찾아갔지만 결국 냉정하게 버림 받고 사만다에게 안겨 울먹이는 시릴의 작은 등이 계속 흔들렸다.


세번째 씬- 훔친 돈을 아빠에게 주려고 가져갔다가 또다시 내몰리게 되고, 자전거를 타고 먼거리를 되돌아 오는 모습을 작가는 길게 앵글에 담는다. 소년의 마음에 촛점이 닿아있다


라스트 씬- 쫒기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모든 짐을 덜고 가벼워졌을 소년의 뒷모습이다.


https://youtu.be/2QAnvvVz-G8?si=heDPtLfw6Kx_-E__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2악장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또 한 생각은 그 나라의 문화나 정서에 관한 것이었다. 적어도 시릴이 사는 사회에서는 비록 어리고 환경이 형편없어도 누구 하나 이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강압하지 않는다. 설득을 하고 달래 가며 아이를 다룬다. 험한 욕설로 인격을 모독하지도 않는다. 어린아이의 생각 따위는 쉽게 무시하는 우리 사회와는 사뭇 다르다.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건 당연한 권리인데도 세상은 그리 너그럽지 못함을 자주 경험한다. 처절한 환경에 처한 시릴이라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 아이를 존중하는 그 사회의  기본적인 풍토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르덴 감독이 나타내고 싶은 모습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이에 비해 아이를 대하는 자세가 메마르고 험한 우리 사회와는 많이 대조적이다. 요즘 뉴스를 도배하는 보육교사들의 아동학대 모습은 거론 조차 하기 끔찍하다. 죄 없이 희생된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런 악마들을 키워낸 이 사회가 부끄럽다.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끝으로 이 영화에서 시릴이 유일하게 밝게 웃는 장면 하나를 보여주고 싶다. 아빠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사만다가 물병을 건네며 장난하는 씬이다. 늘 인상 쓰고 다니는 게 습관처럼 굳어 버린 시릴이지만 사만다의 장난에 활짝 웃음이 피어난다. 원래 그런 아이란 없다.


시릴이 처음으로 밝게 웃는 장면. 사만다가 장난스레 물병을 건네주며 늘 찌푸리고 있는 아이에게서 이런 예쁜 표정을 찾아준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예술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신성시되는 감독이라 한다. 이렇게 따뜻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마음이 푸근해지며 여유로워진다. 그렇게 한 뼘 더 넓어진 생각으로 남을 이해하는 마음도 더 커진다. 이는 내가 이런 영화들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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