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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Oct 18. 2018

가을이 오면.. 설렘이 인다

사람들은 이걸 '비'라고 부른다 - 영화 <패터슨> 중에서


가을이다.


흰구름 동동 떠있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

설렘이 인다.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돌아오는데 가을 하늘이 너무 예뻐서 행복했다.


추억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하고,

또 희망이기도 하다.


가을엔 왠지

시 한 소절 읊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런데 아쉽게도 딱히 외우는 시가 없다.

그럴듯한 시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릴케의 '가을날'도

저 높은 가을 하늘만큼의 울림이 없다.

쑥스럽게도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란 노래가

하늘의 구름처럼 동동 설레게 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본 영화 <패터슨>에 

버스기사인 패터슨은

틈나는 대로 일상을 시로 옮기곤 한다.

우연히 길가에서 만난 한 소녀도

패터슨처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시를 쓰는 게 취미인 듯하다.

긴 머리의 예쁜 소녀는

패터슨에게 자신이 쓴 시 하나를 읽어 주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물이 떨어진다'


물이 떨어진다. 

밝은 하늘에서

머리카락처럼 떨어진다.

어린 소녀의 어깨 위로 찰랑대는 머리카락처럼.


물이 떨어진다. 

아스팔트에 웅덩이를 만든다.

구름과 건물을 비추는 탁한 거울들.


우리 집 지붕 위로 떨어진다.

엄마 위로 그리고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걸 ''라고 부른다.



'Water Falls'


Water falls from the bright air. 

It falls like hair.

Falling across a young girl's shoulders. 


Water falls.

Making  pools in the asphalt.

Dirty mirrors

with clouds and buildings inside.


It falls on the roof of  my house.

It falls on my mother and on my hair.


Most people call it 'Rain'.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을

어린 소녀의 긴 머리칼에 비유한 것도 좋았고,

고인 물 웅덩이를 거울로 비유하여

구름과 빌딩이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도 상큼했다.


난 무엇을 보고 저런 풋풋한 시상을 떠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

억지로 떠올리려 하니 더 하얘진다.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도 좋다.


에밀리 디킨스를 좋아하냐는 소녀의 물음에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이라 대답하자 멋진 버스 드라이버라고 인삿말을 남긴다.


영화 후반부에서,

번역된 시는 우비를 입고 샤워한 느낌이라는

일본 시인의 말에

패터슨은 웃음을 터뜨리며

무슨 뜻인지 안다고 대답한다.

근데 나도 알 것 같다ㅋ.

그래서 나도 번역되지 않은 원본좋다.



'때론 텅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물하죠 ' 일본인 시인이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며 건네는 말이다.

그간 써오던 시 노트를 기르던 개가 갈갈이 물어 뜯어  시인의 꿈과 함께 사라지고,

마침 상심해 있던 패터슨에게 이 빈 노트는,

또 다시 희망의 꿈을 선물한다.


'때론 텅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물하죠' 일본인 시인이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며 건네는 말..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출생지, 뉴저지 패터슨..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그 패터슨이다. 패턴슨의 패터슨!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쓴 시. 혹여 날 떠난다면 자신의 심장을 뜯어내어 절대 되돌려 놓지 않겠노라고 쓰고 있다.


오늘처럼 맑은 가을날,

시가 있는 영화 <패터슨>은

가을과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기분 좋은 영화였다.



소녀와 패터슨이 좋아한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찾아 보았다.

그중 '언제나 사랑했다는'이란 시는

이 가을날의 사랑고백처럼

설레었다.


'언제나 사랑했다는'   - 에밀리 디킨슨

언제나 사랑했다는 증거를 가져올께요.
사랑하기 전에는
살아있지 않았어요.
충분히.

언제나 사랑하리라는 맹세를
당신께 바칠게요.
사랑은 삶이고,
삶은 불멸이에요.

이 말을 당신은 의심하나요?
그대여
그러면 나는 보여드릴 게 없어요.
시련 말고는.


22. 10월 어느 이른 아침, 그날 가을 하늘도 참 신비로웠다.


https://youtu.be/WDAPcnJJteY

가을이 오면 -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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