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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May 20. 2019

명화와 함께 파리로 가는 길

세잔, 마네, 르누아르..

 '파리로 가는 길'...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남부에 위치한 칸에서부터 북부 파리까지 육로로 경유해 올라가면서,  프랑스의 낭만과 매력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영화다.  


활짝 핀 라벤더 군락지.. 나도 꼭 한 번 보고 싶다


2000년 전 로마 점령기에,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도교


중년의 앤(다이안 레인)이 영화제작자인 남편 마이클의 출장길을 따라 프랑스 남동부에 있는 칸까지 오게 된 건, 늘 바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귀 통증으로 다음 출장지인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동승하지 못하게 되고, 할 수 없이 남편과는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다. 마침 남편의 사업 파트너인 자크의 자청으로, 두 사람 돌발 렌치 로드 트립이 시작되는데... 


자크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자들의 자유분방한 감성을 지닌 초로의 신사이다. 이른바 카르페 디엠을 제대로 실천하는 낙천주의자다. 프랑스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그도 분명 프로방스의 트루바두르(음유시인,12세기)파리의 리베르탱(자유사상가,18세기)의 영향을 받았을 테다. 일에빠져 사는 배려 없고 무딘 감성의 미국 남자 마이클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 영화가 내게 좀 더 흥미로웠던 건 영화 속에 세 개의 명화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명화는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린 세잔의 그림이다. 자크가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생 빅투아르 산을 가리키며,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산이고 소설과 그림에도 수없이 나온다고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세잔 그림이 최고예요"

이에 앤은,

"이 햇빛 아래 세잔 그림을 보면 정말 멋지겠어요"라고 답한다.

"뉴욕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은 좀 슬퍼 보이거든요. 거기 있기 싫은 것처럼"라고 덧붙인다.

이 같은 앤의 말에 심히 공감된다. 우리나라 미술관의 그림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ㅋ


영화 속 명화 1. 폴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
프로방스의 상징 '생 빅투아르 산'


두 번째로 등장하는 명화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이다. 여행 중 갑자기 차가 고장 나자 자끄는 대책 없이 가 풀밭 위에 자리부터 편다. 호텔에서 챙겨 온 음식들을 펼쳐놓고는 비스듬히 누워,

"마네 그림 속에 있는 척하죠. <풀밭 위의 점심>.." 하고 제안한다.

 "아! 좋아요"


앤은 기꺼이 호응하며 그림 속 여인의 포즈를 취해 보인다.


영화 속 명화 2.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네 그림 속에 있는 척하죠"


마지막으로 나오는 명화는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이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가 끝난 후 식당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자크는 앤에게 춤을 청한다.

 "르누아르 그림인 척하죠 <부지발의 무도회>.. 괜찮죠?"

"그래요^^"


영화 속 명화 3.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
"르누아르 그림인 척하죠"



"파리, 오늘은 갈 수 있나요?"
"걱정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


이 대사는 내가 꼽은 가장 인상적인 대사이다. 대사 하나영화가 보여주고픈 메시지가  응축되어 담겼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여유로운 정서가 행복을 만든다고 확신한다.


남편 마이클과는 남부에서 파리를 갈 때 항상 비행기로만  탓에 놓쳤던 것들을 고 느낀 앤은, 파리에 도착 후 자끄에게 이런 인사말을 건넨다.

"자크, 이번 여행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루 말로..."


"나도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파리는 자끄 말대로 어디 안 갔다.



다음 날 아침 앤의 숙소로 자크가 정상 빌렸던(자칫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카드값과 영수증, 기약이 담긴 메모와 함께 초콜릿(앤 시크릿? 디저트) 상자가 배달된다.


 초콜릿을 앙 깨물며 행복 마침표를 찍는 앤딩 씬^^



곱게 나이 든 다이안 레인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실감 났다.. 영화 속 다이안 레인은 마침  나이와 얼핏 비슷할 듯싶다.


'여자 좋아하고, 담배 많이 피고, 먹는 거 좋아하고..'


잘해보라는 친구에게 앤이 전하는 자끄의 모습은 결코 엮일 염려가 없다는 뜻이었다.


남다른 감성의 프랑스  신사 자크의 들이댐이 언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참을성 있게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앤의 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유혹도 잘 이겨 내었고, 배려있는 거절에도 센스가 있다. 이 정도의 일탈은 무미건조한 삶에 비타민 같은 역할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영화 속 앤은 내가 닮고 싶은 매력 있는 여인이었다. 대략 난감하기도 했던 자끄와 함께한 여행이었으나 덕분에 나도 덩달아 아름다운 프랑스 여행과 음식, 감성.. 두루 잘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이 내 마음을 열었어요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라고 자끄가 말하자 앤도 대답한다. "나도요"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거 알잖아요"
 "놓치는 거 아니에요"


놓치는 게 아니라는 마지막 앤의 대답 뉘앙스가 하다.


  권태로움만을 선사하는 중년의 남편들, 

조금은 경각심을 갖게 되길 희망해본다..


'댁의 아내는 안녕하신가요?'



 생 빅투아르 산(Mont Sainte Victoire ,1895 - 폴 세잔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 - 에두아르 마네
부지발의 무도회, 1883 - 오귀스트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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