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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Oct 16. 2021

어두운 긴 터널

삶에 감사하며 잘 살아가기

오랫동안 멈추었던 아침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긴 터널을 마침내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사실 터널은 한 번 빠져나와도 또 다른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그간 몇 차례를 지나왔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잠깐씩은 주식에 눈을 팔고, 매일 반복되는 어지러운 정치뉴스에 귀를 팔고, 그러다 지겨우면 영화를 찾아 또 다른 공허한 시간으로 정신을 맡기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무겁고 마음은 어지러웠다. 급기야 두통에 시달려 두통약을 먹기도 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잘 알면서도 내 의지는 시종 그런 것에 끌려다닌다. 일종의 중독일 수도 있겠지만 무기력증 또는 게으름증에 가까울 것 같다. 당장 눈앞에 주어진 일 외엔 아무것도 하기는 싫고, 그저 손쉽게 폰에 의미 없는 시선을 놓는 것이다. 그런 내가 사뭇 좀비 같다.

한 번씩 못 견디고 폰을 안 보이게 치워놓는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켜고 책을 잡으면 순간 머리가 거짓말처럼 맑아진다.


정신을 깨우는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맘에 맞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기분이다. 그것은 행운 같은 거다. 글을 대하는 순간 주변은 텅 빈 공간이 되고 나와 그 사람만이 그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럴 때 내 감정은 살짝 들뜬다.


얼마 전 < ×정여울>이란 책에서 읽었던 글인데 마음에 오래 머물러 옮겨본다.


'단지 그 사람과 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가슴이 따뜻해지고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가. 그 사람과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내 안의 무언가가 힘차게 용솟음치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내면의 황금'을 준 것이다.

내면의 황금이란 우리 정신 가장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최후의 그 무엇이며,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할 무엇이다. 내면의 황금이란 이루지 못한 꿈이나 표현하지 못한 감정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정신의 뇌관이다.(중략) 현대인이 쉽게 피로와 우울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내면의 황금을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내면의 황금을 나눌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부부에게는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과연 내면의 황금을 공유할 만한 사람이 곁에 있는가. 가끔씩은 남편이나 동생, 아들이 상대가 되어주고 있기는 하나 충족할 만큼은 못된다. 내면의 황금을 비록 공유는 못해도 내 감정과 정신의 뇌관을 충족시켜주는 건 단연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이다.



작년 말경,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시다가 5개월 만에 인사도 없이 서둘러 하늘나라에 가셨다. 사실 아직도 아버지 얘기를 글에 담는 건 쉽지 않다. 다만 아버지 소원대로 당신 침대에서 곱게 주무시다가, 늦은 새벽 홀연히 떠나신 것에 대해선 감사하다. 아버지 발인날은 우윳빛 벚꽃이 한창 만개한 4월이었다. 하늘은 유난히 쾌청했고 대부도 장지로 가는 바닷길은 신비한 옥색으로 출렁거렸다. 서해 바다가 그렇게 예쁜 빛깔을 띠는 건 처음 보았다. 덕분에 한결 위로가 되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도 귀에 이어폰을 껴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여전히 실감이 지만 시간이 상처를 보듬어주고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마침내 오랫동안 멈추었던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그렇게 긴 침묵을 깨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 또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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