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선을 다시 대하는 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해서
항상 같은 감각이 남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손의 힘, 속도, 멈추는 지점.
외형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몸이 느끼는 감각은 분명 이전과 같지 않다.
나는 같은 화면 앞에 여러 번 서 본다.
어제와 같은 자리,
비슷한 빛,
익숙한 도구를 들고 서 있지만
몸은 매번 조금씩 다르게 반응한다.
내게 반복이란
능숙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리기 위한 시간에 가깝다.
익숙해졌다고 믿는 순간에도
감각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어떤 날은 같은 선을 긋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수없이 해본 일인데도
손이 망설이고, 속도가 늦어진다.
그럴 때 나는 내가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망설임은 감각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무심히 흘려보냈을 찰나의 차이를
이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나는 반복 속에서
오히려 조금씩 속도를 늦춘다.
더 정확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같은 선을 다시 긋는 일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 위에
또 하나의 시간을 겹쳐 놓는 일에 가깝다.
그 겹침 속에서 선은 점차 다른 무게를 갖게 된다.
거창한 의미가 더해진다기보다
그저 정직한 시간이 쌓인다.
반복은 감각을 굳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예민하게 깨운다.
그래서 때로는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자주 멈추게 된다.
오늘도 나는 같은 화면 앞에 섰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어제와 같은 감각은 아니었다.
나는 그 작은 차이를
기꺼이 마주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반복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