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첫 직장의 문 두드리기

취업 성공률 높이는 리스트 세우는 법

by 이서후

스위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살던 시절,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했다. 그곳에서 난 그냥 ‘Ju’라고 불렸다. 영어보다는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는 스위스에서 반 토막 난 이름으로 살며, 내 존재도 반 토막이 된 느낌이었다. 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따돌림, 이방인의 슬픔 등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유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몸이 많이 아파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가,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업을 마치겠다고 다시 돌아갔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오기가 생겨서였을 거다. 힘든 나날 속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멈추자, 두 눈에서 불이 났다. 스위스의 축축한 회색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던 게 생각난다. ‘내가 이러곤 못 산다!’


그런 마음으로 가장 무모하게 오기를 부렸던 게, 직장을 잡고자 동분서주했을 때였다. 난 건강상의 문제로 한 학기를 놓쳤기에 나머지 학기를 강제적으로 휴학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난생처음 취업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외국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을 새로운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파악하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했다. 어떠한 직장을 타기팅 하는가에 따라서 구직의 접근 방법이 달라질 테니까.




난생 첫 직장 잡기 프로젝트,

리스트 Step 5.


리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 잡는 일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진심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제약도 빼놓을 수 없으니,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래는 내가 작성한 리스트의 예시다.


1. 첫 번째, 이유 (Reason): 나에게 직장이 필요한 이유


1) 자아실현. 이놈의 스위스란 나라에서, 골골댔던 기억만 안고 돌아갈 수는 없다. 적어도 타국 생활에서 스스로 칭찬할 만한, 배우는 점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 경제력. 언제까지 가족들의 지원만을 바라보고 살 것인가. 성인이 되었는데, 하루빨리 나도 경제적 자립을 꿈꾸어야 한다.


3) 경력 쌓기. 난 비행기 타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하는 스위스까지 왔다. 그런데 학교만 졸업하고 돌아가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최대한 이 기회를 활용하여, 첫 경력을 이곳에서 쌓아보자.


2. 두 번째, 꿈 (Dream): 내가 직장에서 해 보고 싶은 것


1) 업종: 디자인, 혹은 예술에 관련된 일이면 좋겠다. 학교에서 배운 걸 활용할 수 있으니까.


2) 다이내믹의 정도: 사회에 대한 첫 경험인 만큼, 틀에 박힌 일보다는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는 일이 좋겠다.


3) 기타 가치: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고 싶다. (+ 퇴근 후 동료들과 수다 떨며 맥주 한잔 하는 로망 추가.)


3. 세 번째, 현실 (Reality): 나를 막는 제약 파악하기


1) 국적: 나는 외국인이다. 스위스에서 외국인 학생으로 취업 비자를 받기가 쉽지만은 않다.


2) 경력, 언어: 난 아직 대학 졸업 전의 학생이다. 게다가 독일어도 잘 못 한다. 아는 건 간단한 소개 정도.


3) 실력의 약점: UX 디자이너를 원하는 곳은 많으나, 프로그래밍 실력도 요구할 수 있다. 난 그쪽에 약하다….


4. 네 번째, 히든카드 (Hidden Card):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강점은?


1) 융합적 능력: 시각 예술, 디자인, 음악 등을 서로 접목한 다수의 프로젝트 경험이 있다. 직접 쓰고 그린 동화책도 내 보았고.


2) 영어 실력: (비록 영어로 말할 때마다 심약해지지만) 꽤 쓸만한 영어 실력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3) 태도: 일만 시켜준다면, 뭐든지 열심히 하고 배울 자세가 되어 있다. 정말이다. 난 간절하므로.


5. 다섯 번째, 결론 (Conclusion): 그렇다면 내가 공략할 회사는?


1) 업무 스타일: 다양한 업무를 이것저것 도울 수 있는 융합형 디자이너가 필요한 회사.


2) 기업 분위기: 새로운 시도에 열린 마음을 가진, 모험심 강한 회사.


3) 의사소통: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회사.


간단한 절차이지만, 이 리스트는 첫 직장을 어디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막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단 스타트업을 공략해 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의 일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의 첫 순위는 리스트에 적혀있다시피 자아실현이었다. 또한 열정을 중요시 여기는 스타트업에 지원한다면, 아무래도 보수적인 스위스의 다른 기업들보다는 취업에 성공할 확률도 조금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리스트를 작성하고 생각을 정리한 후, 다음 전략을 세웠다. 그래서, 어딜 두드려야 내게 취업의 문이 열릴까? 그때부터 폭풍 온라인 리서치를 시작했다. 카테고리는 스타트업. 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곳은 많았으나,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제약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쓰는 사람을 환영하는 곳임에도 회사 분위기가 썩 와 닿지 않는 곳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맨 처음 작성했던 리스트가 엄청난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고 나의 위치를 분석한 결과, 정말 스타트업의 꿈과 같은 회사를 만나게 되었으니.


물론 당시에는 그런 미래를 모르고,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로 도배된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받은 이메일 계정을 통해 임팩트 허브(Impact Hub)에서 메일이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 (스위스에서 살다 보면 영어가 반가워진다. 신기한 일이다.)


그 메일을 따라 취업의 문을 두드렸더니, 정말 놀랍게도 첫 직장의 문이 열렸다. 임팩트 허브는 어떤 곳이고, 그곳에서 어떤 내용이 담긴 메일을 보냈길래?


다음 글에서는 그 질문에 답하며, 임팩트 허브의 창의적인 네트워킹 구조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음글: 2. 임팩트 허브에서 날아온 메일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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