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얀의 고향,'자일리아샤' 여행하기
(…) 저무는 해가 호숫가 주변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들을 비춘다. 복층 형식의 반달 모양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나무껍질 사이에 켜켜이 박힌 조개껍데기로 엮어진 외벽은 마치 물고기의 비늘 같다. 그 집의 주인들은 대부분 보리얀의 가족처럼 배를 타는 사람이거나 진주를 운반하는 이들이다. 지대가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보리얀의 집이 보인다. 아담한 집의 지붕 꼭대기에서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마도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모양이다.
드넓은 호숫가의 소박한 마을 풍경이 보인다. 지대가 조금 높은 언덕 위로 웅크린 반달처럼 생긴 둥근 집들이 군데군데 모여있다. 물안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아서 호수와 맞닿은 주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잔잔한 물결 위에 나룻배들이 쉬고 있다. 그 나룻배들을 관리하는 조금 더 큰 배들도 수면 위에서 일렁인다.
이따금씩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물가에서 조금 올라온 구릉지에는 초록 들판이 펼쳐진 위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저 멀리 아파라티 할아버지의 낡은 오두막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이고, 그보다 좀 더 아래에는 보리얀이 견습 활동을 하는 목장이 보인다. 보리얀은 선장인 아버지 바얀의 허락으로 벌써 배를 타는 법을 익히고 있지만, 아직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가축들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적한 길가를 따라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면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은색 나무들이 보인다. 보리얀은 잠깐 멈추어 서서 나뭇잎의 향기를 맡는다. 쌉싸름하면서도 뒤로는 달큰한 향내가 난다. 잎사귀들은 조금 거칠거칠한 솜털이 나 있는데, 줄기에 가까울수록 은색을 띠고 있고 끝으로 갈수록 호수와 비슷한 푸른색을 띤다.
보리얀은 헤사티오 나무들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에만 피는 꽃, ‘이스다일’들은 아침이 되자 다시 봉오리 모양으로 오므라들었다. 무릎까지 자라 있는 그 난초들을 헤치며, 보리얀은 꽃봉오리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걷는다.
‘난 차라리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걸지 않는 돌멩이와 풀, 꽃들이 더 내 친구 같은 걸.’
보리얀이 한숨을 푹 내쉰다. 자신을 싫어하는 다른 아이들을 아침부터 볼 생각을 하니, 견습 목장에 다가가는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벌써 저쪽에서 다른 아이들이 투닥거리고 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보리얀은 입술을 굳게 다문다. 그리고 검은 머리를 질끈 묶은 후, 은빛 머리를 가진 아이들의 무리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