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팀장

16. 난 당신의 지시를 원하지 않아.

by 오얼 OR

부서라는 말보다는 팀이라는 말이 익숙해 지고 팀 단위로 회사의 대부분의 일이 돌아가면서 리더,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매일 매일 하나씩 하나씩 더 늘어나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대표이사 방에서 나오는 팀장과 본부장은 화로 가득 차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무사히'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고 나면 회사의 규모나 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매일 매일 어떻게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고 무슨 일인가가 발생한다.

한창 출근 중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울리는 메시지나 이메일 알림도 반갑지 않고 '이렇게 밤낮 없이 지시와 명령에 시달리는데 왜 정작 나는 팀원들에게 말 꺼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출근, 아침부터 본부장과 대표이사 방에서 그칠 줄 모르는 지시사항과 안되고 있는 일들을 체크 당하며 겨우 문 밖으로 탈출하고 나면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어리를 자리에 던지면 끼워진 볼펜 사이로 빼곡히 받아적은 오늘 할 일이 펼쳐진다. 일도 일이지만 이 일들을 혼자 다 할 수도 해 볼 도리도 없고 어떻게 팀원들과 나누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반응은 너무 뻔하다. 바쁘다고 하겠지. 어제 받은 숙제도 다 못했다고 하겠지. 외근이나 미팅이 있어 당장은 못한다고 하겠지. 진실 반, 거짓 반인 걸 알면서도 이야기를 꺼내기가 너무 어렵다.


아침 회의시간, 대표이사와 나를 연결하는 다이어리에 적힌 일들을 팀원들과 하나씩 체크해 나간다. 백퍼센트인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오늘 아침도 깨지고 나왔겠지. 하지만 팀원들의 얼굴을 보니 내일도 안 깨질 자신은 없다. 아침부터 너무 피곤하다. 쓰러질 것 같다. 그런데 이 몸둥아리는 잘 아파지지도 않는다. 한참을 다이어리에 체크를 하다가 쓸데없이 팀원들에게 칭찬하는 말들을 던진다. 그리고 내 표정을 보면 다들 있던 기운도 없어질 것 같은데 기운내자는 말을 한다. 나도 기운이 안 나는데. 그리고는 무거운 입을 연다. 더 하자. 이렇게 하면 올 연말에 우리 평가는 바닥이다. 좀 근성을 가지고 살자. 다들 오늘만 다니고 말거 아니지 않냐. 내일 아침에 다시 체크하자.


회의실을 나오는 뒷통수가 따갑다. 나도 내 다이어리에 빡빡하게 적힌 지시사항이 싫다. 누군들 그런게 좋지 않다. 속된 말로 나는 우리 사장보다 오래 다닐 자신있다. 당신은 계약직 임원이고 나는 정규직 직원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넘기는 게 너무 어렵다. 하루라도 지시 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 그 싫은 지시를 나도 하고 있다. 근데 나는 대표이사 방에서도 뒷통수를 보이며 나오고 있고 팀원들이 모인 회의실에서도 뒷통수를 보이며 나오고 있다.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산 담배의 비닐을 까면서 나의 금연 의지를 꺾인다. 하지만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웃는다. 결국 어떻게 시켜야 되나 하는 고민을 해결했다. 어쨌든 내일 아침까지 해 오라고 시키고 나왔으니까. 내가 이겼다. 정신적 승리를 자축하며, 담배는 한 대만 피우고 엘레베이터에 오른다. 자리에 앉아 서랍을 여니 똑같이 한 대만 피운 담배 한 갑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


리더십 그게 뭔데. 세련되게 지시할 줄 아는 것도 리더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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