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누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
그 길에 끝에는
'End of the road' 지금도 유튜브에서 다시금 많이 재생되고 있는 BOYZ II MEN의 명곡이자 X세대 팀장들에게 익숙한 노래다.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문득 그 길에 끝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일을 맡았을 경우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그 길에 끝에는 그는 나에게 아니겠지만 내가 믿고 있는 팀원이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임 팀장이었을 때는 업무 배분에 실패해 내 자신도 끊임없이 야근을 하고 내가 에이스라고 생각하는 팀원에게도 괴로움의 나날들을 보내게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각자 다른 회사에 있지만 그래도 관계는 유지되어서 가끔 만나 맥주를 한 잔 기울이며 옛날 얘기는 하는 정도는 되었으나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팀장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해야 할 고민은 일의 완성도와 결과물 보다도 '누가 그 일을 맡아서 진행할 것인가?'라는 판단일 것이다.
상사가 모르는 걸 원망할 필요도 없다.
어느 날 본부장이 묻는다. '이번 프로젝트 OO씨에게 맡기면 되겠지? 어떻게 생각해?'라고 믿음직하고 유능한 것도 좋은데 그 친구에게 일이 편중되는 것 같아서 우려가 된다. 본부장이나 대표이사에게는 그런 건 상관없다. 그걸 깨닫는 데도 몇 년은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왜 본인들도 매일 보는데 '나한테 저런 걸 또 묻지?'라는 생각과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나중에 혹시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책임전가용으로 나에게 되묻나?'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둘 다 아니다. 그들은 나만큼 팀원들에게 대해 관심이 당연히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지던 그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총합이 많으면 된다는 것이다. 일을 했으면 내가 팀원들을 괴롭혀서라도 많은 일을 해내면 되고 많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환경적 요인이 좋아서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면 수고했다는 몇 마디 하고 다 같이 행복할 수 있으니까 또 상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알면 난 좋은 사람, 신경 써 주는 사람이고 몰라도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왜? 팀장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책임은 안지고 싶다고 늘 팀장들에게 시그널을 주지만 내가 안 지고 싶다고 해서 안져 지는 건 아닌 것도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되도록 책임은 안 지고 싶다. 이런 임원들이 대다수인데 내가 그들의 경험과 지식, 태도 등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봐야 나만 괴롭다. 그걸 몇 년 괴롭고야 알았다. 윗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해고 당하면 잠시 바뀌는 척 하겠지만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니까.
내가 정하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다.
누가 할 지에 대해서는 내가 정해야 한다. 그게 중간의 샌드위치로 끼어 있는 내가 가장 잘 해야 하는 역할이다. 일을 하는 실무자도 불만이 없어야 하고 일의 결과를 정해진 기일 내에 받아봐야 하는 윗 사람의 만족도 생각해야 한다. 결국 나름대로 일의 안배에 대한 시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 팀에 돌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일과 특별한 일을 구분해야 하고 그걸 누가 하고 있는 지를 명확히 파악해서 새로운 일이 왔을 때 1차적으로 좀 덜하고 있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좀 덜하는 친구와는 도저히 이 과제를 성사시킬 수 없다면 좀 잘하는 친구의 일상적인 일은 좀 덜하는 친구에게 옮겨줘야 한다. 멋지게 옮겨주는 방법은 그 사람의 특징을 관찰하고 활용하는 방법인데, '마치 오랫동안 관찰한 팀장이 너의 특성을 잘 파악한 일을 주는거야'라는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 일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다만 가끔 팀 내 공명심에 불타는 친구들이 있다. 대다수가 주니어겠지만 이 친구들에게도 무조건 일을 더 맡기면 안된다. 너무 불타오르면 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람의 특성을 안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매일 사람을 지켜보고 있으니 한 번 파악해 볼만 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일은 무엇을 어떻게 보다도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