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충정로
어제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내가 쓰고 싶은 시가 이런 시였는데 내 마음이 그의 시어가 되어 시를 헤집고 다녔다 충정로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높은 빌딩들 사이로 이 차선 도로가 나 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길에는 맞바람이 나를 막아선다 전소한 담배꽁초를 버리고 오는 길에선 나를 재촉한다 담배 연기와 은행잎이 그의 방향을 가리킨다 은행잎이 헤엄친다 대한해협을 건너는 조모 씨의 모습처럼 거센 풍랑을 뚫으며 장구를 친다 잠시 앞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공중제비를 돌다가 뒤로 넘어진다 또 잠시 등 떠미는가 싶더니 막아선다 일렁이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시 한 편을 읽어냈다 나에게는 이례적으로 시 한 편을 끝내고는 필사를 했다 내가 하고 싶던 말이 이것이었는데 그의 시어가 내 마음을 헤집는다 공중제비를 하다가도 텀블링을 돈다 대상도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다가도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결국 내 할 말을 잘하면 되는 것을 그게 나의 역할이다 연거푸 담배를 태운다 잠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뺀다 담배 연기와 은행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애초에 닿을 수 없는 물성이지만 가끔씩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시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닿지 않아도 소리 나는 것 괜히 공중제비를 돌아본다 어차피 넘어질 바엔 코가 깨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