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song
08년이었나, 동네의 이자카야에서 일을 했었다. 외로운 사장님과 함께하는 유일한 직원이었던 나는 사장님의 예쁨을 받았고, 근무가 끝난 후 그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초과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이모뻘의 손님이 나한테 30살이냐고 물어서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이었는데. 어느 아저씨는 생맥주는 잘 따른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열아홉이었는데.
가끔은 전날 사장님의 술자리 후 난장판을 홀로 치워야 할 때도 있었고, 영업을 안 한다고 미리 고지하지 않아서 출근했다가 바로 귀가하는 허무한 일도 있었다. 그만둘 때에는 나의 재수 기간 동안 독서실비를 내준다는 그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나왔었다. 부담스러웠지만, 어찌 됐든 호의였을 그의 태도는 마지막 급여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탓에 불호로 바뀌었다.
그곳을 시작으로 여러군데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지나온 매장들 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08년의 이자카야에서는 온갖 튀김 냄새가 잔뜩 베어 남았다. 튀김 가루는 눈꽃이라고도 하던데. 하얀 눈이 흩날리는 어느 겨울에 나는 튀김옷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또 남은 것이 키로로의 겨울노래.
사장이 고른 일본 노래가 무작위로 흘러나오던 앰피쓰리에서 어느 순간 이 노래가 나왔다. 일본인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노래하는 "윈타쏭"은 겨울의 손님 없는 어느 이자카야와 참 잘 어울렸다.
지인들과 오뎅탕을 먹기로 약속했다. 뚝섬의 어느 이자카야로 오라고 했다. 뚝섬은 07년인가 두 번 정도 가보고 처음 가는 곳이었다. 이자카야의 이름은 코코로. 코코로라니 너무 귀여운 이름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윈타쏭이 떠 올라 급하게 검색했다. 그러나 검색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찾아낸 것은 코코로의 뜻이 마음이라는 것. 윈타쏭의 가수는 코코로가 아니고 키로로라는 것.
윈타쏭을 듣고 있자니, 오뎅탕에는 겨자와 간장을 빼먹지 않고 챙겨야 되고 도쿠리는 오천 원인데 전자렌지에 데우면 된다는 것. 그리고 락교는 낫또와 발음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한창 외던 날이 오버랩되더라. 당시의 부담스러운 호의를 보인, 결국 불호로 귀결된 사장님은 상호를 바꾸는 몇 번의 고초를 겪다 가게 위치마저 바꾸면서 아직 동네에 남아있다. 마주쳐도 아는체하진 않지만, 이제는 불호의 감정도 전혀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주칠 때 아는 체하는 건 아니지만.
와중에 다행인 것은 이 노래를 알아챘다는 것. 찾아냈다는 것. 코코로라는 귀여운 단어가 마음이라는 따듯한 뜻이라는 것. 코코로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바닥에 눈이 쌓였다는 것. 튀김은 맛있다는 것. 시로이 코나유키가 훗테 코코로니 토도쿠요 winter song(하얀 가루 눈이 내려 마음에 닿는 겨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