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가방, 무거운 깨달음
초등학교 5학년, 나는 처음으로 내 양심의 무게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담임이셨던 서OO 선생님은 엄격했다. 그날,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반 아이들 전체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벌을 섰다. 선생님은 각자 자기 가방을 머리 위로 들라고 하셨다. 힘든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선생님은 사물함에 가서 가방에 책을 더 채워오라는 불호령을 내리셨다.
나는 망설였다. 정직하게 책을 가득 채울 것인가, 요령을 피워 조금만 채울 것인가. 힘든 게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양심 대신 가벼움을 택했다. 몇몇 친구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팔을 덜덜 떨었지만, 적당한 무게의 내 가방은 들 만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고 안도했다. 그때,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자기 가방을 뒷사람에게 전달하세요.”
순간 교실의 공기가 멎는 듯했다. 내 앞에 있던 친구의 가방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반면 내 가방을 건네받은 뒷 친구는 야속하게도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 가볍다."
그 순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게 바로 여러분의 양심의 무게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내 손에 들려 있던 가벼운 가방의 감촉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선생님의 단호함은 비단 벌을 줄 때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새 학기 첫날, 선생님은 급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못 박으셨다. 지독한 편식으로 김치조차 먹지 못했던 나는 매일 점심이 공포였다. 선생님은 우는 나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
“남길 것 같으면 먹을 만큼만 받아. 그 한 조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해.”
선생님의 그 단호함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 배식받을 때 “조금만 주세요”라고 용기 내 말하는 법을 배웠고, 세상 모든 음식을 딱 한 젓가락이라도 맛보는 법을 익혔다.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엄격했기에 선생님께 받은 칭찬은 뼛속 깊이 새겨졌다. 미술 시간에 그러데이션을 표현한 내 그림을 보고 "이안이는 참 꼼꼼하구나."라고 칭찬하셨을 때, 생전 발표를 안 하던 내가 용기 내 손을 들었을 때 "아주 좋은 생각이야."라고 격려해 주셨을 때, 그 한마디는 내 존재를 통째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2학기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이안아, 요즘 친구들에게 짜증 내는 모습이 자주 보여. 1학기 때 좋았던 모습이 잊힐 정도야.”
그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그 이후, 내 행동을 더욱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후에 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주셨다. ‘요즘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은 것 같아 보기 좋아.’
혼을 낼 때보다 돌아서서 더 마음을 써주셨던 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사랑 방식이었다.
세월이 흘러 교사가 된 나는, 한때 내 교실의 가장 눈부신 햇살이었던 아이 앞에서 차마 단호하지 못해 괴로워한 적이 있다. 아이가 엇나가는 것보다, 아이가 나를 미워하는 게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 무력했던 내 모습 위로, 20년 전 가볍던 가방의 감촉이 선명하게 겹쳐졌다.
아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단호함은, 아이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나는 서 선생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이 온몸으로 가르쳐준 ‘양심의 무게’를 잊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아픈 실패를 딛고 나아갈 단 하나의 이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