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다정함이 내게 남긴 것
음악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었다.
종종 ‘저런 선생님을 내가 학창 시절에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근무지를 옮긴 첫날,
음악 선생님은 어색함이 가득한 내게 먼저 다가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후로도 그는 늘 한결같았다. 교무실에서든 회식 자리에서든,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물이 떨어지면 어느새 새 물을 가져오고, 반찬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받아왔다. 표정이 어두운 날이면 “무슨 일 있어?”라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의 말버릇은 늘 “도와줄 일은?!”이었다.
묻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한 번은 학부모 상담이 길어져 늦게 교무실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모두 퇴근했을 줄 알았는데, 그가 말없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어.”라는 짧은 말에 울컥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는 전화를 걸어 “마음은 괜찮아?”라며 안부를 물었다. 나를 향한 다정함은 그렇게 일상의 틈새마다 스며 있었다.
음악 선생님이 남달랐던 건 학생들에게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스승의 날, 학생회 담당을 맡은 그는 교문 앞에 레드카펫을 깔아놓았다. 그리고 교사 전원에게 ‘맞춤형 상장’을 준비했다. 내가 받은 상은 ‘흥부같이 흥도 많고 재미있는 사회선생님상’이었다. 심지어 급식실 조리원분들과 청소 어르신들까지 상장을 받았다. 어르신들은 “평생 이런 건 처음 받아본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한 사람의 다정함이 학교 전체를 따뜻하게 덮는 순간이었다.
그는 피아노 전공자였다. 어느 날은 음악실 키보드를 교무실로 옮겨와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교사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를 듣는 동안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선율은 내 마음마저 흔들어 놓았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퇴근 후 매일 연습하며 작은 꿈을 품었다. 언젠가 그가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곡, ‘시대를 초월한 마음’을 내 손으로 연주해 선물하고 싶었다.
2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학교 행사였던 ‘작은 음악회’ 무대에 올랐다. 사회자에게 부탁해 곡 소개를 띄웠다. “연주할 곡은 음악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시대를 초월한 마음’이라는 곡입니다.”
떨리는 손끝으로 첫 건반을 눌렀다. 수많은 위로와 다정함이 떠올랐고, 감사의 마음을 오롯이 눌러 담아 연주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 아래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연주가 끝난 저녁, 음악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하려고 집까지 태우러 갔다. 차에 타자마자 그는 불쑥 꽃다발과 편지를 내밀었다.
“이안! 오늘 연주, 정말 감동이었어. 이건 내 선물.”
나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나만을 위한 꽃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초·중·고 졸업식 날에도 내 손에는 상장만 들려있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꽃 선물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오롯이 나만을 위한 꽃.
오롯이 나만을 위한 꽃이었다.
활짝 핀 꽃 위로 지난 2년의 시간이 겹쳐 보였고, 그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연주라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훨씬 더 큰 선물을 받아버린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까지 서로 행복해야지.”
늘 말버릇처럼 하던 그의 한마디가 가슴에 맴돈다. 그 다정함은 내 안에 스며들어 어느새 내 습관이 되었다. 요즘은 나도 동료들에게 무심코 묻곤 한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내 인생 첫 번째 꽃다발은 결국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 사람의 다정함은 또 다른 다정함을 낳고, 그 마음은 다시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