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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날, 가장 먼저 갚고 싶었던 빚

예수님을 가장 닮았던 스님 친구에게

by 서이안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히던 순간, 나는 숫자보다 먼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이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스님이었다. 기독교인인 내가 불교인인 그와 가장 가까웠다는 사실은, 우리 우정이 가진 역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 된 것을 시작으로, 그가 출가한 뒤에도 우리의 인연은 이어졌다. 그리고 내 인생이 가장 어두울 때마다, 친구는 어떤 계산도 없이 내 곁에 있었다.

임용 수험생 시절, 생활비는 늘 모자랐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왕복 세 시간 거리를 걸어 친구를 만나러 간 날이 있었다. 헤어지던 길, 친구는 황금색 봉투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너한테 투자하는 거야.”

그 안에는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봉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빛이 환했지만 눈물이 그 빛을 흐리게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살면서 내가 가장 선명히 본 예수님의 얼굴은 스님인 내 친구의 얼굴 위에 있었다.


사실 나를 말로 응원해 준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궁핍한 현실 속에서 가장 실질적인 힘이 된 것은 친구가 건넨 돈이었다. 친구의 응원은 불안한 수험생활을 버티게 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순간의 20만 원은 그 어떤 격려보다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 후로도 친구는 나를 돕겠다며,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내 계좌에 10만 원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염치없게도 그 돈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생활비가 아니었다. 반드시 은혜를 갚고야 말리라는 다짐이자,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가장 뜨거운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교사가 된 후 첫 월급날이 왔다.

부모님께 봉투를 내밀며 각각 50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평생 나를 위해 일만 하신 손에, 내가 드린 봉투는 너무도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한번 살게. 각오 단단히 하고 와. 맘껏 시켜.”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

“많이 먹을 거니까 각오해.”

하지만 막상 식당에서는 밥 한 그릇만 비우더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때 알았다. 친구는 애초에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그저 힘들어하는 내 곁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갚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커지는 빚이 있다.

그리고 친구가 내게 했던 ‘투자’의 진짜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돈을 돌려받기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 내가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좋은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투자였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교실에서 작은 방식으로 그 빚을 흘려보내고 있다. 성적이 낮아 주눅 들어 있던 축구부 아이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문제집을 건네주었다. 혹여 차별로 보일까 조심스러웠지만, 그 아이의 눈빛에 스치는 안도감을 보며 내가 받은 다정함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스포츠클럽 대회 준비로 지친 아이들에게 피자를 시켜준 날도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먹어 금세 동이 나자 내 지갑을 털어 더 주문했다. 웃으며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받았던 위로가 다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졸업한 지 오래된 제자 몇 명과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난다. 뷔페에 데려가 마음껏 먹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길 바란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음식이 마음을 대신해 위로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마 평생 친구에게 진 빚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빚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받은 다정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걸.

내 인생 첫 월급은 그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 내게 온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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