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국경이 있다면

서로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법

by 서이안

교실은 20평 남짓한 네모난 상자다. 이 좁은 공간에 서른 명의 열다섯 살 인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옆 사람의 숨결이 닿을 듯한 과밀 지역이다. 물리적 거리가 이토록 가까우면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질 법한데,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면 실상은 정반대다.


이 비좁은 교실은 사실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섬나라와 같다.


교실 뒤편, 거울이 걸린 벽 앞은 ‘뷰티 연방’의 영토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아이들이 모여들어 앞머리 롤을 말고 틴트를 바른다. 그곳은 틱톡 챌린지의 성지이자, 그들만의 유행어가 암호처럼 통용되는 곳이다. 반면 복도는 ‘스포츠 제국’의 식민지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은 좁은 복도를 운동장 삼아 땀범벅이 되도록 뛰어다닌다. 야구 슬라이딩을 하고, 축구공 대신 실내화 가방을 찬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 한가운데,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침묵의 공화국’ 아이들도 있다. 물론 그사이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이중 국적자들도 존재하지만, 대개 아이들은 자신과 코드가 맞는 무리 안에서만 안도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 나라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지만 휴전선보다 더 견고한 국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서로의 영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종종 충돌한다.


“아 쌤! ○○이가 교실에서 뛰다가 제 필통 떨어뜨렸어요. 샤프심 다 부러졌잖아요.”

조용한 아이들이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한다. 그들의 눈에 스포츠 제국의 아이들은 평온한 일상을 파괴하는 무례한 침입자들이다. 반면 활발한 아이들은 그런 불평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고작 그런 걸로 화를 내냐는 표정이다.


사회 교과서에서는 이런 태도를 ‘자문화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자신의 문화를 기준으로 타 문화를 평가하는 태도를 말한다. “내 방식이 옳고, 너희 방식은 이상하다”는 그 오해가 교실 바닥에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을 세운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 교실에서 숨 쉬면서도, 서로 다른 나라에 격리된 채 살아간다.


그런데 그 견고한 국경이 기적처럼 열리는 순간이 있다. 거창한 평화 협정 때문이 아니다. 서로의 필요가 맞닿는 아주 사소한 계기 덕분이다.


지난 체육대회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학급회의 시간, 체육부장이 칠판 앞에 섰다. 선수 선발 라인업을 짤 때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녀석이 학급기 제작 안건이 나오자 목소리가 작아졌다.

“야, 우리 반 깃발 만들어야 되거든? 이것도 점수에 포함이라 잘해야 되는데...”


교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체육부장의 시선이 교실 구석, 평소 조용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에게 향했다.

“이건 미술 잘하는 네가 좀 맡아줄 수 있냐?”

평소의 장난기 어린 말투가 아닌, 꽤 정중한 부탁이었다.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아주 작게 “응”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아이의 눈빛은 ‘이제 내 차례구나’라는 듯 반짝였다.


며칠 뒤 조례 시간이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왔다.

“쌤! 이거 보세요. 저희 깃발 다 완성했어요!”

아이들이 펼쳐 든 깃발 중앙에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11반을 상징하기 위해 내 얼굴 양옆에 숫자 11 모양의 빼빼로를 그려 넣은 그림이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특징을 묘하게 잘 잡아낸 그림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와, 이거 언제 다 했어? 특징을 어쩜 이렇게 잘 잡았어? 디테일이 살아 있네!” 나의 감탄에 아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 7시에 와서 색칠했어요. 얘네가 밑그림 다 그려주고요.”

그림을 그린 아이들도, 옆에서 물통을 나르며 도왔을 활발한 아이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복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붓을 든 아이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눈빛과 치켜세운 엄지. 그 순간, 교실을 가로지르던 철조망은 눈 녹듯 사라졌다.


사회 시간엔 이를 ‘문화 상대주의’라고 가르친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나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맥락에서 그들을 바라봐 주는 것이다. 스포츠 제국 아이들은 ‘답답함’이라 여겼던 그들의 침묵을 작품을 위한 ‘섬세함’으로 다시 보게 되었고, 조용한 아이들은 ‘소란스러움’이라 여겼던 그들의 에너지를 학급을 위한 ‘열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순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었다.

어른들의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정치 성향, 소득 수준, 취향의 차이로 끊임없이 국경을 긋고 산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을 쉽게 비난하고 손가락질한다. 어쩌면 교실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물론, 30명이 모두 절친이 되어 국경 없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있을 때 편안하니까. 억지로 섞이게 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영토를 여행할 수 있는 임시 비자 정도는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반에 국경이 있다면, 그 국경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는 프리패스는 ‘다정함’이라는 여권이었으면 좋겠다. “그림 멋지다.” “축구 잘하더라.” 그 사소한 인정의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오늘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 10분 동안, 그 투명한 여권을 손에 쥐고 서로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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