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사랑, 너무 적은 싸움
사회 교과서 ‘인구 변화’ 단원을 가르칠 때면, 아이들에게 1960년대 인구 피라미드를 보여주곤 한다. 밑변이 넓고 위로 갈수록 뾰족한 삼각형 모양. 나는 칠판에 숫자 하나를 적는다.
6.0
“얘들아, 1960년엔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가 평균 6명이었어. 우리 할머니 세대는 기본이 5남매, 6남매였단다.” 아이들은 “와, 징그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낳아요?” 하며 기겁한다. 그 반응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지금 우리 반 서른 명 중, 형제가 셋 이상인 집은 손에 꼽는다. 적잖은 아이들이 외동이다.
사회 교과서에서는 이를 합계출산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이 숫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보험이었다. 많이 낳아야 그중 몇이라도 살아남아 가문을 이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합계출산율 0.7명의 시대이다. 이제 자녀는 생존 수단이 아니라, 부모의 모든 자원이 투입되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한 아이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순간, 그 아이의 실패는 곧 부모 자신의 실패가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이를 자녀의 '양(Quantity)과 질(Quality) 사이의 선택'으로 설명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부모는 여러 명의 자녀를 키우기보다, 한 아이에게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그 ‘질’의 기준이 지나치게 비싸졌다는 점이다.
서울의 아파트 한 채, 대학 졸업장, 꿇리지 않을 영어 실력 등 이른바 ‘보통의 삶’을 손에 쥐여주기 위해 치러야 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국 부모는 한정된 자원을 쪼개어 둘을 어설프게 키우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단 한 명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확실한 생존을 보장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눈빛은 이를 단순한 투자의 문제로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것은 차라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안’에 가깝다. 과거의 자녀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면, 합계출산율 0.7명의 시대에 자녀는 마치 부모가 흠집 없이 빚어내야 할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선물은 조금 투박해도 그 존재만으로 고맙지만, 작품은 작은 흠집 하나에도 실패작이 될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어찌 부모의 욕심 때문이겠는가. 단 한 명의 아이가 이 가파른 세상에서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탓일 것이다. 그 마음이 부모를 기꺼이 매니저로, 운전기사로, 때로는 파수꾼으로 만든다. 이제 부모는 생존이 아니라, 성공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실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 아이들은 풍요롭지만, 때로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학기 초 상담 주간이었다. 한 남학생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으셨다. 아이는 수업 시간에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엉뚱한 행동으로 좌중을 웃기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어머님의 불안은 깊었다. 보통 10분이면 끝나는 상담이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어머님은 아이의 사소한 습관, 친구 관계, 집에서의 모습 하나하나를 내게 털어놓으며 확인받고 싶어 하셨다. 하나뿐인 아들을 향한 지극한 관심이었다. 사랑인 동시에, 그만큼의 불안이 느껴졌다.
반면,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는 한 여학생은 시험 기간에 창백한 얼굴로 배를 움켜쥐고 양호실을 오갔다.
“선생님, 속이 너무 울렁거려요.”
아직 중학교 1학년, 고입이 코앞인 것도 아닌데 아이는 시험 압박감에 호흡이 가빠지고,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부모님이 대놓고 공부를 강요한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집안의 모든 기대와 시선이 오롯이 ‘나 하나’에게 꽂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물론 과거에도 장남이나 장녀가 짊어져야 했던 무게는 엄청났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형제들이 많아 부모의 시선이 분산될 틈이라도 있었다. 첫째가 혼날 때, 셋째는 숨을 죽인 채 불똥이 튀지 않기를 기다리며 잠시나마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제가 사라진 지금,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왕관을 쓰고 있다.
형제의 부재는 수직적 압박뿐만 아니라 수평적 결핍도 가져왔다.
“선생님, ○○이가 제 볼펜 허락도 없이 썼어요. 기분 나빠요.”
“선생님, 쟤가 저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해요.”
신규 교사 시절, 이런 사소한 민원들을 해결하느라 진을 뺐다. 쉬는 시간마다 쪼르르 달려와 친구를 일러바치는 아이. 작은 갈등 앞에서도 어쩔 줄 몰라하며 곧바로 어른을 찾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부족한 건 인성이 아니다. 필요한 건 바로 ‘싸우고 화해하는 마음 근육’이다.
형제자매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타인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나 역시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지겹도록 싸우며 컸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먹겠다고 멱살잡이를 했고, 내가 아껴둔 음료수를 동생이 마셔버리면 끝까지 쫓아가 응징했다. 우리는 치고받으며 배웠다. 내 욕심만 부리면 관계가 깨진다는 것, 싸운 뒤에도 한 밥상에서 밥을 먹으려면 슬그머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외동이거나 형제가 적은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구조적으로 부족하다. 가정 내에 경쟁자가 없다 보니, 내 것을 뺏기는 억울함이나 치열한 눈치 싸움, 그리고 머쓱한 화해의 과정을 연습해 볼 ‘가장 안전한 스파링 파트너’가 없는 셈이다.
동생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술에 잔뜩 취해 내게 주정을 부린 적이 있다.
“형은 모르지? 내가 형 쫓아가려고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공부가 인생의 전부야?”
평소 무뚝뚝하던 녀석이 쏟아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첫째인 내가 부모님의 기대를 감당하는 동안, 둘째인 동생은 나름의 열등감과 비교 속에서 치열하게 버텨왔던 것이다. 지금 동생은 직업 군인을 거쳐 공무원이 되었고,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녀석은 매년 내 생일이면 나이 수만큼의 용돈을 보내온다. 나는 옷을 살 때면 핑계 삼아 동생에게 연락을 하곤 한다. “야, 이거 어떠냐?” 우리는 서로에게 여전히 애틋하고, 가끔은 미안하고, 더없이 든든한 내 편이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 상당수에게는 이런 피 섞인 파트너가 없다.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형제들의 빈자리는 커져만 간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학교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학교가 가정의 빈자리를 모두 채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교실은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와 30분의 1이 되어보는 공간이다. 싫은 친구와 짝이 되어보고, 사소한 오해로 다퉜다가 떡볶이 하나에 풀리기도 하는 곳, 지식보다는 관계의 맷집을 키우는 곳이다.
“선생님, 쟤가 제 거 함부로 썼어요!” 씩씩대며 교무실로 찾아온 아이에게 나는 곧바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대신, 넌지시 묻는다. “그래서, 너는 쟤한테 뭐라고 했는데?”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좁은 교실에서 서로에게 부대끼며 가족이 아닌 타인과 가족처럼 지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저출산 시대, 아이들은 오늘도 서로의 어깨에 부딪히며 자라고 있다. 텅 빈 놀이터 대신, 이 좁은 교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