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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소설]카레가 먹고 싶어서

BGM 노라조 - 카레

D는 대학 졸업 후 톱스타들을 대거 거느린 엔터테인먼트사에 입사했고, 업계 평균치를 웃도는 연봉에 만족하며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 상사의 악의적인 험담에 휩쓸려 멘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노력할 건 노력하자고 결심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이 괜히 그러진 않을 거야. 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노력하면 알아줄 거야.’ 그러나 그의 괴롭힘은 습관처럼 반복됐고, D는 지치고 말았다. 


사교성 좋고 뭐든 적극적이던 ‘반짝반짝 D’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두려운 ‘어두침침 D’가 되었다. 끈적한 불안이 찾아왔고, 마음은 딱딱하고 추웠으며, 감정조절이 힘들어 불쑥불쑥 화가 나거나 눈물이 차올랐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고, 불필요한 적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마음이 쓰러지자 건강도 나빠졌고, 건강이 나빠지자 생활이 흐트러졌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천근만근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겨우겨우 출근해도 지각하기 일쑤였다. 원인불명의 호흡곤란으로 몇 차례 쓰러졌고, 의사의 권유로 벤토린(기관지 경련 처치액)을 챙겨 다녔다. 퇴사 후에도 우울감에 빠져 지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 거리에서 (상사가 자주 입던) 특정 브랜드 셔츠만 봐도 흠칫했다. 불쾌한 건지, 불편한 것인지, 불안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꿉꿉하고 질척한 트라우마였다. 그래도 병원은 싫었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시간은 약이니까.     


성인 ADHD 판정을 받기 전까지, D는 자신을 실패작이라 생각했다. 구제 불능, 실수투성이, 게으름뱅이, 싫증쟁이, 못생긴 골초, 난폭한 외톨이, 변덕스러운 예비노파 등등. ‘나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존재’라 자체 진단했다. 배설하듯 써댔던 습작들은 개연성을 잃고 멋대로 분분했다.    

  

그때, D를 살린 것은 카레였다. 송이버섯을 듬뿍 넣고 몽글몽글하게 끓인. 그날은 담배를 사러 3주 만에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담배를 사서 가는 길에 ‘이 담배도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아 벌써 귀찮네.’ 한심한 푸념을 쫑알대는데 짙은 카레향이 훅 다가왔다. 저만치 낯선 간판이 보였다. 골목길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터에 세모꼴로 자리 잡은 작은 카레 가게였다. 못 보던 가겐데... 언제 생겼지?


“어므나! 드디어 오셨네요?” D가 들어서자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주인(요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날 아나? D는 어리둥절했다. “우리 계속 봤잖아요. 편의점에서도 스치고, 약국에서도 마주치고. 가게 오픈하면 꼭 오시라고 해야겠다! 했는데...” 왜요?라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살구처럼 웃었다. “진짜 맛있거든요. 우리 집 카레. 매일매일 오고 싶을 만큼.”      

그녀 말이 맞았다. 카레는 정말 맛있었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글피도, 그글피에도 오고 싶을 만큼. 심지어 미개봉 담배가 있어도 나오고 싶을 만큼. 


훗날 요미는 말했다. 음식은 그런 거라고. 혀끝에 생생한 행복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부득부득 살고 싶게 한다고. 자신도 일본 어느 카레집에서 할머니가 만들어준 카레를 먹고 다시 살고 싶어진 채 귀국했었다고. 


이후, D는 카레를 먹기 위해 거의 매일 밖으로 나왔다. 나온 김에 햇볕을 쬐었고, 바람을 마셨고, 비를 맞았고, 눈을 밟았다. 양지와 그늘을 마음껏 오갔고, 개구쟁이처럼 물웅덩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마구 첨벙거리며 휘저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정신과를 찾아갔다. 거창한 동기가 있어야만 괜찮아지고 싶어 질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카레가 먹고 싶어서’ 괜찮아지고 싶어질 수도 있는 거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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