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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Aug 07. 2019

말코손바닥사슴의 이빨

알래스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앵커리지에는 ‘말코손바닥사슴의 이빨(Moose’s tooth)’이라는 식당이 있다. 스케일이 워낙 큰 알래스카에서는 식사를 위해 줄을 선다는 개념이 드문데, 여기는 예외다. 빼곡한 주차장 먼 쪽에 차를 주차해두고 식당에 들어서자 익숙한 물건, 진동벨을 쥐어줬다. 30분은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고 했다. 주린 배를 달래며 입구로 다시 나왔다. 문 위에 붙은 간판에 눈이 갔다. 새하얀 설산을 배경으로 잘생긴 말코손바닥사슴이 그윽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말코손바닥사슴의 이빨'은 알래스카 산맥의 한 봉우리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북미 대륙 최고봉 디날리 산 남쪽에 솟은 봉우리로, 모양새가 초식동물의 새하얀 앞 아랫니를 닮아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물론 앵커리지 시내를 종종 활보하며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말코손바닥사슴이라면 얼마든지 이곳의 마스코트가 될 수 있겠다. 길을 막고는 평화롭게 우물거리는 거대한 입술과 그 속의 새하얀 이빨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자리에 앉자 웨이터가 왔다. 메뉴판을 건네며 여기 대표 메뉴는 다양한 피자와 한국식 버팔로 윙(닭봉)이라고 알려줬다. 어째서 알래스카 맛집에 한국의 치킨이 대표 메뉴가 되었을까. 무척 궁금했지만 나는 혼자였기에 고를 수 있는 메뉴는 하나뿐이었다. 웨이터를 다시 불러 시그니처 피자 한 판과 루트 비어(root beer)를 주문했다.

Moose's Tooth - Anchorage, Alaska - 2018.09.20


 진동벨과 메뉴판 위의 치킨을 보며 푸근해지던 마음은 루트 비어 한 모금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루트 비어는 북아메리카 대지의 음료다. 북아메리카에 자생하는 새서프래스라는 식물의 뿌리를 짠 즙으로 향을 낸 탄산음료인데, 그 맛이 맥주와 비슷해서 루트 비어로 불린다. 실제로는 생강의 맵싸함과 바닐라의 달콤함, 홉의 쌉싸름함이 어우러진 맛이다. 유리잔에 담긴 빛깔이 흑맥주처럼 어두운 갈색인 데다 맛이 굉장히 진해 오래 달여낸 탕약을 마시는 듯했다.

 ‘말코손바닥사슴의 이빨'에 들어앉아 이 땅이 짜낸 뿌리즙을 들이켰다. 내내 낯설어하던 북녘의 공기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진 듯했다. 잘생긴 말코손바닥사슴이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듯.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알래스카에 온 걸 환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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