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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Jul 29. 2019

X가 A에게

존 버거 <A가 X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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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2일, 영국의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John Berger)가 사망했을 때 SNS에서는 “미 구아포, 미 소플레테, 나의 카나딤, 야 누르. 편히 쉬세요. 고마웠어요.” 형태의 추도문이 물결을 이뤘다.

   내가 당시 우러러보던 사람도 SNS에 추도문을 올렸다. 그 사람은 글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노라 했다. 나는 사망한 이를 몰랐다는 것이 속상했다. 존 버거는 누구고, 저 정체불명의 단어들이 뭐길래 다들 그러는 걸까?

  나중에야 나는 저 단어들이 존 버거의 소설 <A가 X에게>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들은 소설 속 화자 아이다가 그녀의 연인 사비에르에게 편지를 보낼 때 그를 가리키며 쓴 말들이다. 그녀가 쓴 다른 말들까지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카멜레온, 그리스어로 ‘(나의) 엎드린 사자’.

  미 구아포, 스페인어로 ‘나의 멋쟁이’.

  하비비, 아랍어로 ‘내 사랑’.

  카나딤, 터키어로 ‘(나의) 날개’.

  미 소플레테, 스페인어로 ‘나의 횃불’.

  야 누르, 이집트의 춤곡에서 유래한 ‘나의 빛’.


  모든 책은 독자의 가슴속에 호기심이라는 빈 공간을 만들고는 그곳을 채우려 한다. 첫 번째 독서는 그런 끌림으로 시작한다. 첫 페이지들을 넘기는 힘은 호기심이다. 첫 독서가 호기심이라면 두 번째 독서는 존중이다. 이제는 나의 일부분이 된 이 책 한 권을 위해 글쓴이와 펴낸이가 쏟았을 시간과 노력. 그것을 헤아리며 읽는 것이다. 나는 <A가 X에게>를 두 번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총 세 번을 읽었다. 세 번째 독서는 고마움이다. 내게 이 책을 보내줘서, 세상에 이 책을 있게 해 줘서 바치는 고마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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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가 X에게>는 편지를 묶어서 만든 책이다. 책의 서두에 속하는 <존 버거가 회수한 편지들> 장에서 작가는 폐쇄된 옛 교도소에서 편지 묶음을 발견한 얘기를 들려준다. 편지들은 73호 감방에 머물던 사비에르라는 이름의 죄수가 그의 연인 아이다에게 받은 것들이다.

  사비에르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인 남자다. 그의 연인 아이다는 세계의 어느 구석, 황량한 마을의 약국에서 일한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헬리콥터가 사람을 쫓고 탱크가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교도관들에게 검열을 받기에 그녀는 시간과 장소, 인물의 이름 같은 것들을 바꾸어 적는다. 그리고 편지에는 표면적인 이야기 이외에 아이다가 숨겨 놓은 이면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다는 그 이야기를 사비에르만 이해할 수 있게 암호를 걸어 두었다. 편지가 원래 그렇듯, 그 이야기는 그들만의 비밀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책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걸까? 아니다. 당신이 교도관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존 버거도 책을 엮을 때 <아이다(A’ida)가 사비에르(Xavier)에게>라고 한 것이 아니라 <A가 X에게>라고 한 것일 테다. 암호를 푸는 것은 상상력이다. A가 무엇이고 X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이다. 암호를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으로 건너가 볼 용기를 내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테두리 안에 가두는 역할인 교도관이 아닌, 마음이 자유로운 우리들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비밀들로부터 당신을 떼어놓기 위해 당신을 그곳에 넣었지요. 그리고 해가 지는 지금, 나는 당신에게 비밀들을 보내요. 그들은 그것을 읽을 수 없고, 당신은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 ” - p.46


  그리고 - 다음은 '우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음이 자유로운 당신들은 이걸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선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할 거예요.”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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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이란 무엇인가. 비밀은 속삭임이고, 가까움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우리는 가까워진다.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편지 속에서나마 가까워지길 바란다. 아이다가 편지 속에 담은 머리 위 천장의 모습과 블랙커런트의 냄새, 손 그림들은 내밀한 속삭임과도 같다. 같은 지붕 아래서 같은 냄새를 맡고, 서로 어루만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고받는 비밀들로 마음은 가까워질 수 있을지언정 몸은 그렇지 못한다. 닿음과 닿지 못함. 사랑함과 사랑하지 못함.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함 사이를 대류하는 조용하지만 뜨거운 움직임이다.

Handdrawing by John Berger, <From A to X>

  어느 편지에서 아이다는 마을의 오래된 담배 공장에서 일어난 일을 전한다. 동료들이 숨어있는 공장에 아파치 헬기가 찾아와 기관총과 헬파이어 미사일을 겨누자, 동네의 여인들이 그들을 지키려 모인 것이다. 여인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다가오는 탱크와 헬기를 응시하며 일층의 벽을 둘러싼다. 총부리를 겨누는 아파치, 점점 좁혀 들어오는 탱크의 무한궤도에 맞서 이들은 손잡은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책의 문장들은 온기로 가득하다. 그 온기는 비벼댄 마찰의 뜨거움이다. 간극을 메우고 저항을 이겨내려는 수많은 아이다들의 의지와 끝없이 세워지는 벽들의 부딪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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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다는 절망하는 침묵을 향해서는 분노한다. 니니냐가 연인의 죽음에 침묵하며, “삶이란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믿고 “그냥 조용히 지내며 나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말할 때 아이다는 분노한다.

  아이다는 반응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살아 있으므로 반응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응한다는 것이다. 슬픔에 울음을 삼키기보다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매를 든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때리지 마시죠,라고 말하는. 주변에 있는 이들의 괴로움을 함께 토로해주는. 아이다의 편지들은 그래서 살아 숨 쉬는 노래이자 응시이며 저항이다. 그녀와 사비에르를 떼어 놓으려는 모든 것에 맞선 저항이다. 그와 그녀 사이의 거리, 이미 지나간 세월들, 함께하지 못하는 미래, 죽음. 그 모든 것에 맞선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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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함께 비행기를 탔던 일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어느 날 사비에르와 아이다는 산책을 나간다. 둘이 향한 곳은 비행장. 아이다는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탈 거라는 생각에 설렌다. 조종사는 사비에르다. 경비행기 CAP 10B를 타고 그들은 날아오른다.


“그건 몸이 떠오른다거나 뭔가에 끌려 올라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에요, 그렇죠? 그건 자라는 느낌, 성장의 느낌이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기억되고 망각에서 되살아날 때, 아마 우리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예요.” - p.59


  사비에르는 노련한 기술로 배럴 롤(barrel roll, 옆으로 뒤집기)과 루프 기동(loop, 위로 거꾸로 뒤집기)을 보여준다. 루프 기동 중 원형 궤적의 꼭대기에서 비행기가 시동을 끄고 정적을, 무중력 상태를 이뤘을 때 느낀 것을 아이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몸은, 이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내 피부에서 끝나지도 않았으며, 침묵 사이를 쭉 뻗어나가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저편으로 향했어요.

  침묵은, 내 몸처럼, 거리로 채워져 있었고, 당신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원형 궤적을 계산하고 그리는 동안, 그 거리는 친밀하고 가까운 것이 되었어요.”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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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작은 경비행기의 조종석. 거기서 행복했을 그들의 순간을 생각한다. 정적의 순간, 무중력의 순간, 침묵이 친밀함으로 가득 차는 순간.


“방금 그 배럴 롤은 얼마나 걸렸죠 - 몇 초, 일 분, 한 생애? 나는 모르겠어요.” - p.60


  지금 그들의 자리를 생각한다. 이중 종신형으로 이번 생에는 감옥을 나올 수 없는 사비에르. 주변의 상처 입고 고통받는 이들로 둘러싸인 아이다. 자유롭지 못한 그들의 삶을 생각한다. 자유롭지 못한 수억의 삶을 생각한다. 하늘을 유영하는 경비행기 속에서 다정한 그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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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버거에 의해 회수된 편지들로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기억되고 망각에서 되살아’ 난다. 글일 뿐인 그 편지들 속에서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존재를 느끼고 그들 사이에 오가는 비밀을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내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따뜻한 불씨일 수도, 누군가에겐 뿌리 깊이 뻗는 싱그런 어린 나무일 수도 있다. 존 버거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괴로운 나날들이 다가와도 누군가는 불씨로 어둠을, 누군가는 나무로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다와 사비에르의 편지가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편지를 자주 다시 읽어 봐요. 밤에는 안 읽죠. 밤에는 그 편지들을 다시 읽는 게 위험할 수 있거든요.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일하러 가기 전에 그것들을 읽어 봐요. 밖으로 나가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보죠. 가끔은 지붕 위에 올라갈 때도 있어요. 어떤 때는 밖으로 나가 길 건너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기도 하고요, 거긴 개미들이 많아요. 그래요, 아직 많아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얼룩진 봉투에서 당신의 편지를 꺼내 읽는 거죠. 그렇게 읽다 보면, 사이의 날들이 기차의 화물칸이 지나가는 것처럼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지나쳐 가요! 사이의 날들이 무슨 의미냐고요?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과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와의 사이예요. 그리고 당신이 이 편지를 쓴 날과 그들이 당신을 잡아간 날 사이이기도 해요. 또 교도관들 중 누군가가 그걸 부쳤던 날과 내가 지붕 위에 앉아 그걸 읽고 있는 날 사이이고요.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해야만 하는 오늘과 우리가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잊어버려도 되는 그 날 사이예요. 그날들이 바로, 내 사랑, 사이의 날들이고,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선로는 이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죠.”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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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누굴까. 편지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어디일까. 장소의 이름들은 아프리카, 중동의 이름을 넘나들고 남미와 스페인에서 쓰는 이름도 등장한다. 아이다가 사비에르를 부르는 이름에는 아랍에서 연인을 부를 때 쓰는 말도 있다. 이들은 아이다와 사비에르면서, 그들보다 거대한 무엇이다.

  <A가 X에게>의 편지들은 존 버거가 아이다의 이름을 빌려 쓴 편지들이다. 편지의 수취인은 X다.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변수인 X. 사비에르이면서 엎드린 사자, 멋쟁이, 횃불, 날개, 빛인 모든 사람들이다. <A가 X에게>는 자유롭지 못한,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리고 이 글은 그에 대한 나의 답장이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당신에게 보낸다. 나의 사소한 편지가 우리 사이의 날들을 건너 당신에게 닿기를. 당신이 기억되고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날 수 있기를.


  미 구아포, 미 소플레테, 나의 카나딤, 야 누르.

  나의 멋쟁이, 나의 횃불, 나의 날개, 나의 빛. 고마웠어요. 이제는 편히 쉬세요. 나의 아이다.

  사비에르가 아이다에게. X가 A에게. 나로부터 당신에게.




Cover photo : John Berger photographed by Jean Mohr, 1999. Courtesy Random House Inc., New York © Jean Mo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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