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습니다, 도피했습니다

by 괜찮은사람

“연차는 확인되셨고, 이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올리브영체의 HR담당자의 말을 듣고

서진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어차피 가라는 말 없어도 가려고 했거든요'


그랬다.

시간은 오후 3시 30분,

그녀의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었다.


빈 책상과 서랍을 쓱 보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닥타닥.


사무실에는 조용한 키보드 타건음만 울렸다.

떠들썩하거나 따뜻한, 차일을 약속하는 인사 따위 없이

조용히 서진은 의자를 밀어 넣고 문을 나섰다.


'안녕,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것들아.'




"승객 여러분, 곧 이 역의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소지품을 챙겨주시고... "


아침부터 낑낑거리면서

몸 만한 캐리어를 옮긴 탓일까.

서진은 약간의 몸살기에 몸을 떨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 맞다, 나 쉬러 왔지...?'


몸은 휴식을 위해 몇 시간을 달려왔지만

여전히 마음은 서울 어딘가의 환승역에 있었다.


서진은 인파에서 빠져나와 캐리어를 세우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뻥 뚫린 플랫폼 양쪽에서 소금기 있는

바람이 달고 짜게 뺨에 달라붙어왔다.


그렇게 한동안 서진은

마음의 시차를 맞췄다.



시차 적응은 해외여행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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