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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예민하긴 04화

《예민하긴》4화. 화장실에서는 용무만 간단히

by 괜찮은사람

서진은 거울 앞에서 조용히 립글로스를 꺼냈다.

입술을 꾹 눌렀다.
그게 오늘의 마침표였다.


그 순간,
화장실 문이 덜컥 열렸다.


“서진씨~ 요즘 좀… 피곤해?
안 그랬는데 되게~ 피곤해보인다~?”


서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괜찮았는데요.
당신이 말 걸기 전까지는.'


입 안으로만 삼켰다.


“아, 요즘 업무가 많아서 그런가봐요.”


서진은 평소보다 밝은 톤으로 대답했다.


‘그런가봐요’는
말을 끝내고 싶을 때 제일 많이 꺼내는 말이다.


과장은 거울 옆에 서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나도 피곤할 때 립밤 발랐거든~
그게 묘하게… 좀 그런 게 티가 나더라고~
나는 알겠더라~ 그거~”


서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파우치 속에 립글로스를 넣고, 손을 씻었다.


나는 감정 들키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남의 감정을 돋보기 대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피곤한 거다.


과장은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고,
서진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저 먼저 갈게요"


스님들에겐 화장실이 해우소라지만,

회사 화장실엔 회의실보다 더 피곤한 인간이 있다.



#회사생활 #화장실의역습 #피곤라이팅 #예민하긴




회사에서 감정은 늘 ‘관리 대상’이다.

립글로스는 그냥 립글로스일 뿐인데,

누군가는 그걸 신호처럼 해석한다.

그럴 땐, 입술보다 마음이 더 건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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