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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un 11. 2016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요란을 떨다 보면 어느새 텅 빈 내 마음속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한강 다리 위로 지날 때가 있다. 확 트이는 풍경에 시선을 두지만 앞사람과 서로 쳐다보고 약간은 민망했는지 이내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한강을 다시 보고 싶어 괜스레 고개를 내 뒤쪽으로 돌려 본다. '당신 보는 거 아니에요. 한강 보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끄러워 말 못 하여 불편하게 이리저리 한강을 보다가 이내 한강이 사라진다. 몇 번이나 그랬을까. 부끄러움 잠시 숨겨둔 채, 한강을 지긋이 보다가 앞사람과 눈 마주치고 가볍게 인사했다. 마음도 편했다. 아름다운 한강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과 사람이 같이 올 때 쑥스러워서 피하지 말자. 쑥스러운 그 사람도 대부분 나와 마음이 같기에. 약간의 용기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아버지 회사 일을 도와드리고 나와서 아리랑 스쿨에서 하는 김이삭 씨의 강연을 들었다. 싸인 수집이라는 테마로 세계여행을 한 여행가였다. 30분 전부터 도착했지만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김이삭 씨의 유명세를 실감했다. 부러움과 질투심을 안고 나는 티켓을 받아 입장했다.

청춘 문화 싸롱이라는 공간이었는데 만화책도 있고 분위기도 밝은 갈색이 가득 차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앞자리는 벌써부터 차있었고 여자분 혼자 앉아계신 자리가 있기에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강연에 앞서 해금 연주가 울려 퍼졌다. 여행 중 단소를 들고 다니며 버스킹을 했던 기억이 났다. 해금 연주가 끝나자 김이삭 씨가 나왔다.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수업을 땡땡이쳤던 고등학생. 6개의 동아리를 들어 진탕 노는 대학생. 왜 사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던 군인. 파티와 싸인 수집을 하며 라디오에도 출연하게 됐던 유학생.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팔고 여행을 떠난 여행가. 크라우드 펀딩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준 김이삭. 아리랑 스쿨 대표와 입담꾼 박현x 씨의 진행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나버린 강연이었다. 나는 질문 하나를 했다.

"저는 작년에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여행 내내 자유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겠더라고요. 관광으로서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여행이 끝났을 때 내 모습은 초라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면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유명해지기 전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면서 느꼈던 불안함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여행을 떠나 보면 알 수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이삭 씨의 진솔한 고민이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이삭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현실도피로 시작한 여행이라 그런 것은 많이 없었어요. 여행을 하면서 저는 저를 위해서 살았어요. 이기적으로 살겠어라는 다짐을 했죠. 그런데 그게 인생을 바꿨어요.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여행할 때 '돌아가서 뭐하지? 복학은 언제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해봤어요. 그런데 정말 두려운 것은 여행 후의 초라한 내 모습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이 나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유명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 행복을 사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들을 남의 기대에 기대서 살지만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을 까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연이 끝나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내 글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내게 팬이라고 말해주는 그분이 참 감사했다. 누군가 내게 인터뷰도 따갔다. 강연장을 마무리하고 대표님을 따라 뒤풀이 장소로 갔다. 뒤풀이라고 해봤자 막차 끊기기 전에 헤어지는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멋진 생각들을 말했다.

나는 완숙인 달걀 사이에 껴있는 반숙과 같은 존재였다. 저마다 확고한 가치관이 있고 꿈꾸는 이상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도전했다가 실패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런 자리는 아니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얘기하려다 보니 빈 깡통 같이 요란한 내 모습을 돌아오는 길에 느꼈다.

유명한 여행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요란을 떨다 보면 어느새 텅 빈 내 마음속. 마음을 채우러 갔다가 마음이 비워져서 온다.

텅 빈 마음속 무엇으로 채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강 다리 위,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서 느낀 것이 기억났다. 약간의 용기를 계속해서 내어보자. 그것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노력 없는 관계는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 인연이란 것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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