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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06. 2016

늦잠

100원만 주세요.

기억을 더듬어 내가 살던 곳에 가보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기억하는 YMCA 건물은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100원만 주세요... 100원만 주세요......” 1997년 여름, 광명 YMCA 앞 길 모퉁이에 한 여름에도 두꺼운 옷을 껴입은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야 거지 아저씨 저기 또 있다. 으악 냄새 나!” 아이들은 코를 막고 아저씨를 구경했다. 그때 한 어머니가 와서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 태우며 말했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된다.”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차를 타고 사라졌고 나머지 아이들도 하나둘씩 그렇게 없어졌다. 모든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나와 아저씨가 남았다. 나는 고민이 됐다. 100원이면 집 앞 문방구에서 철권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는 아저씨에게 100원을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참 잘 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네가 나중에 큰 사람이 돼서 저렇게 힘든 사람들을 도와줘야 해.” 그날의 기쁨은 잊을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 근처의 모습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미 슈퍼마켓 앞에서 어묵을 팔던 아주머니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신 것을 빼면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늦잠을 잤다. 부스스한 눈으로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있는 식탁 위에는 계란찜과 김치, 그리고 몇 가지 반찬과 밥이 있었다. 그리고 쪽지가 보였다. ‘바둑학원 가기 전에 꼭 밥 챙겨 먹고 가라. 그리고 어젠 참 잘했다.’ 쪽지 밑에는 500원짜리가 두 개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바둑학원 갈 시간이 지났다. 지금 출발하면 15분 정도 늦을 것 같았다. 나는 늦잠도 잤겠다. 일탈을 시작했다. 학원을 갈 시간에 그 아저씨에게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저씨에게 가는 길은 어린 나에게 있어서 모험이었다. 나는 집 앞에 있는 시장을 지나면서 떡볶이도 사 먹었다. 길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따라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동네 약수터에도 도착했다. 거북이 모양과 물개 모양의 동상에서 내뱉는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셨다. 다시 힘을 내서 걸어갔고 나는 아저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떡볶이를 사 먹고 남은 돈은 700원. 500원은 주머니에 넣고 나는 200원을 아저씨에게 드렸다. 아저씨는 어른인데도 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나는 말을 걸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감정 때문에 말을 걸지 못했다. 다 큰 어른이 내게 존댓말을 써서 그런 것이었는지,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외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아저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둑학원은 그대로 있었고 지하 1층에 있던 비디오방은 사라졌다. 편의점에서 1997년도의 500원짜리를 구해서 사진을 찍었다. 문득 500원짜리 두 개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났다. 1997년 11월 22일, IMF가 터졌다. YMCA에 나오는 친구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100원을 구하는 아저씨에게 냄새가 난다고 했던 친구와 그 어머니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뉴스에는 안 좋은 소식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두움이 짙게 깔렸다. 나도 다니던 바둑학원을 잠시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많이 힘들 때야. 괜찮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거리에는 100원을 구하는 아저씨들이 점점 늘어났고 난 그 아저씨들 모두에게 100원을 줄 수 없었다. 그래도 내게 찾아온 위기는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나에게 IMF가 어떤 위기감을 줄 수 있었을까. 나는 부모님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여전히 편안하게 늦잠을 잤다.


난 늦잠을 좋아한다. 게으른 햇살이 나를 비출 때, 일어나서 냉장고를 벌컥 열고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 약간의 일탈 감과 여유를 만끽하는 그 순간. 머리 속에 잔상이 남아있는 꿈들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어릴 적엔 늦잠을 자도 괜찮았다. 늦잠을 자도 어머니가 깨워주시거나 학교에서 혼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늦잠을 자면 점점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군대에 가기 전엔 군대를 다녀오면 다 해결되겠지 싶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엔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백수이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시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탬이 돼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하루빨리 취업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이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어릴 적 그렇게 좋아했던 늦잠은 어느새 죄책감이 됐다. 하지만 걱정을 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잠이나 자자.’ 스스로 되뇌며 잠을 청해 보지만 마음의 짐은 덜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가슴 답답한 밤이 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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