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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7. 2016

너희 집으로 돌아가!

준비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헤이! 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부른 것은 어떤 네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안잔. “그에게 이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라고 묻자 그는 “이거 포카라 가는 버스잖아.”라고 대답했다.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치노?" 나는 대답했다. "놉"

그가 다시 말했다. "자뽄?" 나는 대답했다. "놉"

그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꼬레~!" 나는 대답했다. "옙"

그는 일본 사람과 중국 사람은 영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 사람, 러시아 사람, 프랑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존심이 강한 건지 영어를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얘기를 하던 도중에 그는 내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어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네팔에서 한국인 친구를 도와준 적이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인 친구를 데리고 네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한국 친구가 기독교인이었고 자신에게 신앙을 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는 내게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고 내게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힌두교도인 그는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모두를 존중한다고 했다. 모든 것은 한 길로 통한다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카스트제도가 힌두교 정신에 완전히 위배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카스트제도로 따지면 기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상위 계층이었고 그의 친구는 수드라, 최하위 계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베스트 프렌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힌두교에서 말하는 카스트제도는 원래 힌두 정신에 완전히 위배된 것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여행을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봉사활동을 위해 왔다고 말하니까 친구 얼굴이 표정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그동안 지진 이후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왔지만, 그들은 우리들이 슬퍼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리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체 자신들이 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네팔 사람들이 그 점에 있어서 굉장히  아쉬워하고 때로는 분노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네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이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여기 오면 여행자 커뮤니티나 NGO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하려고 무계획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태양은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두워진 버스 안에서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준비하고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지진을 겪고 집을 잃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집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종교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주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이 자신들은 굉장히 불쾌하다. 우린 지금 이대로가 굉장히 행복한데 우리를 동정하는 듯한 그 모습이 우리는 불쾌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정의 차원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것은 굉장히 가치 없는 일이다. 정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들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고 네팔 정부기관과 연결해서 진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다시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면 너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내게 찾아왔다. 준비 없는 봉사는 그들에게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봉사는 내가 기쁘고자 하는 일이기 전에 남을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간과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야 했다.

네팔 포카라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로 가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안경을 잊어버렸다. 버스에서 정신없이 일어나서 나오느라 안경을 떨어뜨린 것이다. 어두운 밤 안경까지 없으니 왠지 더욱 캄캄하다. 버스 정차장에 가서 찾아보았는데 내일 오라고 한다. 버스가 수백 대가 서있다. 아마 찾기 힘들 것 같다.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경수가 전에 한번 왔던 숙소라 조금 더 싸게 예약할 수 있었다. 더 비싼 가격을 불렀는데도 싸게 해주었다. 네팔 사람들은 친절하고 정직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제대로 못 먹은 우리에게 심플한 아침식사가 있었다. 숙소 바로 옆에 파는 이 간단한 식사는 안나푸르나를 보면서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한 식사였다. 그 기분이 마치 스위스 산맥에서 하는 아침식사와 같았지만 더욱 풍성하고 가격이 저렴한 탓인지 마음이 여유로웠다.

정원에서 뒹구는 강아지를 보았다. 매우 행복해 보였다. 점심을 네팔 현지 음식점에서 먹었다. 가격이 매우 쌌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리는 비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네팔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네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젯 저녁에 받은 충격이 큰 터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녁에 한식당을 가게 되었다. 그곳 사장님이 한국 분이었는데 한국으로 갔고 잠깐 다른 사장님이 계셨다. 참 좋으신 분이었다. 그리운 김치볶음밥 하나를 시켜놓고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네팔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사장님은 씨익 웃으시며 내게 적합한 곳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학교 같은 곳이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는 얘기였다. 전혀 기대치 못한 곳에서 길이 열렸다. 다음 날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장님이 넌지시 던진 얘기가 생각났다. "근데 여기 왔으면 안나푸르나 보면서 패러글라이딩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했던 패러글라이딩이 떠올랐다. 온몸에 흐르는 전율,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그 감동이 기억났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해!" 하지만 네팔에 온 목적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목적은 봉사활동이었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신경 쓰이고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은 내게 있어서 자그마한 테스트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포기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을 기다리며 숙소에서 잠들었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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