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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8. 2016

너와 내가 친구가 되는데 나라는 중요하지 않아

집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NGO 구호단체를 만났다.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함과 동시에 시리아의 난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얘기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터키 우르파에서 여행하다가 만난 시리아 친구가 생각났다. 

펼쳐진 논밭, 오와 열을 맞춘 나무들, 봉긋 솟은 둥근언덕. 한국의 교동도의 느낌과 비슷하며 이스라엘의 곡창지대와도 닮은 이곳은 샨르우르파이다. 이스탄불에서 샨르우르파까지는 버스로 17시간이 걸린다. 5만 원 정도 더 주면 비행기로 두 시간 만에 올 수 있기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여행자의 시간은 금과 같기에. 공항 카페에서 차이 한잔을 마셨는데 5리라(2100원)를 달란다. 내가 먹어본 터키 차 중에 가장 비싼 차이다. 아무튼 와이파이가 되기에 카페에서 숙소를 찾아보고 이동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30km 버스를 타면 10리라(4200원)의 가격으로 싸게 올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해가 지기 시작한다. 원래 오늘은 동굴에서 자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샨르우르파와 아직 친하질 않아서 그냥 오늘은 호텔에서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인도에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 것 이상으로 모두 쳐다본다. 아무래도 동양인 혼자 배낭 메고 온 것은 낯선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점점 건물이 보인다. 샨르우르파를 떠올렸을 때 나는 카파도키아와 같은 곳, 시골과 같은 장소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샨르우르파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크고 번화한 도시라서 놀랐다. 숙소에 자리를 잡았는데 방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고 매트리스가 깔려있는 도미토리다. 이런 건 또 처음이다. 역시 세상은 넓다. 방에는 파리에서 온 루이가 있었다. 루이는 영상을 만드는 친구인데 이라크에 3개월 정도 영상 촬영을 하며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그는 종교적으로 역사가 있는 것에 관심이 많이 이곳 우르파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여행자를 한 명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서 프랑스 사람을 만났다. 발음이 프랑스스러워서 알아듣는데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반갑다.

현금이 바닥나서 돈도 뽑고 저녁식사도 먹으러 나왔다.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모두 앉아서 차이 한잔씩 하고 가라고 권한다. 터키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도란도란 앉아서 터키 차를 마신다. 차이를  한 손에 놓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그 날을 마무리한다. 때론 여럿이서 모여 얘기하기도 하고 때론 혼자서 사색하기도 한다. 차이와 더불어 시샤 또한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퇴근하거나 혹은 평소에 만나서 소주 한잔 기울이는 문화와 흡사해 보인다. 여기저기 보이는 향신료 가게도 보인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고춧가루를 파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시리아는 오래전부터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 우르파는 시리아와 굉장히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아에서 전쟁을 피해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 터키인들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곳이기도 하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다 보니 어떤 친구 한 명이 나를 붙잡고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했다. 그는 태어나서 동양인을 처음 봤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고 우리는 서로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니 그들은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대단하다. 너 어디서 왔어?" 사진 한 장에 쏟아지는 여러 질문을 대답하려 하는데 그들이 일반 터키 사람하고 다르게 생긴 것을 느꼈다.


'혹시 시리아 사람인가? 시리아와 한국은 적대국인데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면 이 사람들이 나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까? 도망쳐야 하나?'     

혼자서 여행하기에 안전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 상황.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혹시 시리아인이니?"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응"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다가 먼저 내가 한국인인걸 밝히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시리아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한국에서 왔어. 전쟁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해." 그러자 한 친구가 오른팔을 걷어올렸다. 그 친구의 오른쪽 팔에는 큰 상처가 나있었다. 팔 중간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약 30cm 미터의 큰 흉터가 나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난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잃고 동생과 같이 이곳으로 도망쳐왔어. 이 상처는 그때 파편에 맞아서 생긴 거야. 난 그래서 전쟁이 너무 싫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무거운 침묵 만이 자리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지나고 시리아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너와 내가 친구가 되는데 나라는 중요하지 않아."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터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한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을 줄 알았다. 남들이 다니는 관광하고는 다른 길이었기에. 그런데 여행을 다녀와보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뒤처진 나를 발견했다.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사람들은 얼굴이 아주 예쁘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여행을 아주 길게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나는 보잘것 없어졌다. 그리고 여행 중에 생각했던 것이 스스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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