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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22. 2016

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아

그냥 네가 길을 잃었을 뿐이야.

아침에 일어나 프랑스에서 만났던 가이드님을 만났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죠?" 우리는 그동안의 안부와 많은 내용들을 나눴다. "어떤 책을 쓰고 싶어요?" 가이드님이 내게 물었다. "쉽게 읽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편하게 읽고 났는데 마음에 따뜻함이 남아 있는 글이요." 그러자 가이드님이 얘기했다. "서준 씨 글은 가끔 보면 가독성이 있어요. 심훈 씨의 책을 읽어봐요. 짧은 문장 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담는 능력이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맞아요. 제 친구도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자꾸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글을 쓰려니까 그 사람을 따라 하게 돼요. 친구 중에 한 명은 처음에 제가 쓰는 글을 읽기 쉽고 재밌었는데 가면 갈수록 누군가를 따라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가이드님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렇게 자신만의 글이 다듬어지는 거죠.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가이드님은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가이드님과 헤어지고 글을 마저 쓰다가 군대 선임이었던 완서와 재욱이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전역하고 뭐하고 지냈어?" 재욱이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완서는 기술을 배웠다. "서주이 너 여기저기 여행 많이 다녔더라. 나도 여행 가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너처럼 그렇게 험하게는 못 다니겠더라. 나는 여행 가서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다가 오는 게 좋더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여행 가고 싶다. 나도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어서 해봤는데 진짜 편하고 좋더라고. 근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열심히 일해서 가야지." 그러자 완서가 얘기했다. "맞아 사람은 일을 해야지." 완서는 전역한 후부터 지금까지 일을 해서 꽤 많은 돈을 모아놓았다. "전역하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어. 허리랑 관절이 너무 아파서 병원도 다니고 있어.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겨우 차 한 대 살 정도밖에 안 모이더라. 나도 어디 여행이나 가고 싶다." 성실하게 일한 완서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동성로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서주이 너 여행 다녔으면 외국 인하고 얘기도 할 수 있어?" 나는 대답했다. "그냥 죽지 않을 정도만 하지. 여행하면서 살아남으려고 배웠어." 나는 여행하면서 영어를 못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준비해서 가야지." 재욱이가 말했다. 재욱이는 언어를 공부해서 그런지 관련 자격증도 많이 갖고 있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전역 후에 자격증, 대외활동을 하는 모습과 기술을 배워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꾸준히 개발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놈팡이처럼 여행만 다닌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점심, 전역 후,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윤호를 만났다. 매우 반가웠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벌써 우리 유럽 다녀온지도 3년 됐네." "그래 맞아 우리 10년 뒤에 뮌헨에서 자식들 데리고 만나기로 한 거 기억나? 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랑 장소도 제대로 안정했었네." 우리는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추억에 빠졌다. "현조한테 너 여행 다녀와서 공부 되게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 요즘도 그래?" 내가 묻자 윤호가 대답했다. "처음엔 좀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동기부여가 잘 안돼서 지금은 뒤로 좀 밀렸어. 요즘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업 준비하고 있다." 사는 게 다 비슷했다. 윤호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또다시 생각이 들었다. '윤호는 열심히 사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구를 떠나 부산을 가기 전, 마지막으로 주영이와 기원이를 만나러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갔다. 나는 길치라 도서관까지 찾아가는데 한참을 헤맸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됐다.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야 너네 시험 합격해서 출세하면 나 잊으면 안 된다." 그러자 주영이가 대답했다. "잊긴 뭘 잊어. 너나 잘 되고 나서 잊지 마라." "잘 되질 않는데 뭘 잊어." 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주영이가 내게 말했다. "왜 너도 네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책도 쓰고 있고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있잖아."

바람이 불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가 한껏 시원해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너 혼자 길을 잃어서 그렇게 헤맨 거야. 남들이 제대로 살아갈 동안 너는 뭐했어?'라는 생각에 답답했던 가슴이 약간은 시원해졌다. 주영이와 기원이는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인사했다. "시험 준비 잘하고!" "너도 책 잘 쓰고! 조심히 여행 해. 또 보자!" 작별인사를 하고 부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대구에 있는 내내 흐릿하던 하늘이었는데 오늘 저녁은 유난히 하늘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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