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널 알아주지 않아

그냥 네가 길을 잃었을 뿐이야.

by 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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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프랑스에서 만났던 가이드님을 만났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죠?" 우리는 그동안의 안부와 많은 내용들을 나눴다. "어떤 책을 쓰고 싶어요?" 가이드님이 내게 물었다. "쉽게 읽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편하게 읽고 났는데 마음에 따뜻함이 남아 있는 글이요." 그러자 가이드님이 얘기했다. "서준 씨 글은 가끔 보면 가독성이 있어요. 심훈 씨의 책을 읽어봐요. 짧은 문장 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담는 능력이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맞아요. 제 친구도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자꾸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글을 쓰려니까 그 사람을 따라 하게 돼요. 친구 중에 한 명은 처음에 제가 쓰는 글을 읽기 쉽고 재밌었는데 가면 갈수록 누군가를 따라 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가이드님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렇게 자신만의 글이 다듬어지는 거죠.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가이드님은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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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님과 헤어지고 글을 마저 쓰다가 군대 선임이었던 완서와 재욱이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전역하고 뭐하고 지냈어?" 재욱이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완서는 기술을 배웠다. "서주이 너 여기저기 여행 많이 다녔더라. 나도 여행 가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너처럼 그렇게 험하게는 못 다니겠더라. 나는 여행 가서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다가 오는 게 좋더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여행 가고 싶다. 나도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어서 해봤는데 진짜 편하고 좋더라고. 근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열심히 일해서 가야지." 그러자 완서가 얘기했다. "맞아 사람은 일을 해야지." 완서는 전역한 후부터 지금까지 일을 해서 꽤 많은 돈을 모아놓았다. "전역하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어. 허리랑 관절이 너무 아파서 병원도 다니고 있어.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겨우 차 한 대 살 정도밖에 안 모이더라. 나도 어디 여행이나 가고 싶다." 성실하게 일한 완서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동성로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서주이 너 여행 다녔으면 외국 인하고 얘기도 할 수 있어?" 나는 대답했다. "그냥 죽지 않을 정도만 하지. 여행하면서 살아남으려고 배웠어." 나는 여행하면서 영어를 못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준비해서 가야지." 재욱이가 말했다. 재욱이는 언어를 공부해서 그런지 관련 자격증도 많이 갖고 있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은 전역 후에 자격증, 대외활동을 하는 모습과 기술을 배워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꾸준히 개발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다. 놈팡이처럼 여행만 다닌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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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점심, 전역 후,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윤호를 만났다. 매우 반가웠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벌써 우리 유럽 다녀온지도 3년 됐네." "그래 맞아 우리 10년 뒤에 뮌헨에서 자식들 데리고 만나기로 한 거 기억나? 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이랑 장소도 제대로 안정했었네." 우리는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추억에 빠졌다. "현조한테 너 여행 다녀와서 공부 되게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 요즘도 그래?" 내가 묻자 윤호가 대답했다. "처음엔 좀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동기부여가 잘 안돼서 지금은 뒤로 좀 밀렸어. 요즘은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업 준비하고 있다." 사는 게 다 비슷했다. 윤호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또다시 생각이 들었다. '윤호는 열심히 사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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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떠나 부산을 가기 전, 마지막으로 주영이와 기원이를 만나러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갔다. 나는 길치라 도서관까지 찾아가는데 한참을 헤맸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됐다.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야 너네 시험 합격해서 출세하면 나 잊으면 안 된다." 그러자 주영이가 대답했다. "잊긴 뭘 잊어. 너나 잘 되고 나서 잊지 마라." "잘 되질 않는데 뭘 잊어." 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주영이가 내게 말했다. "왜 너도 네 길을 잘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책도 쓰고 있고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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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가 한껏 시원해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너 혼자 길을 잃어서 그렇게 헤맨 거야. 남들이 제대로 살아갈 동안 너는 뭐했어?'라는 생각에 답답했던 가슴이 약간은 시원해졌다. 주영이와 기원이는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인사했다. "시험 준비 잘하고!" "너도 책 잘 쓰고! 조심히 여행 해. 또 보자!" 작별인사를 하고 부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대구에 있는 내내 흐릿하던 하늘이었는데 오늘 저녁은 유난히 하늘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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