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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29. 2016

좁은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야

순천만 이야기

갈대 파도가 쓰윽 귀를 적시고 간다.
질퍽한 갯벌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아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담는 연인,
황혼 위를 걷는 노부부를 지나 전망대로 올랐다.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명상의 길과 다리 아픈 길.
많은 사람들이 명상의 길을 택하며 말한다. "어휴, 다리 아픈 길을 누가 간다고 만들어놨대"
그래 내가 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자처해서 간다.

시작하고 10초 만에 후회했지만 꿋꿋이 걸어갔다. 계속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걷는 이 길이 빠르긴 하지만 정말 다리가 아픈 길이라는 것이었다. 
명상의 길과 다리 아픈 길로 갈라졌던 두 갈래길이 다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에 한 노부부를 만났다. 두 분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두 분 같이 찍어드릴까요?" 여쭙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미소를 지으신다. 사진을 찍어드리고 내 갈 길을 가는데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여보 길이 참 아름다워요.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쑥스러우신 듯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이내 손만 꼭 잡으신다.

부러우면서도 약간 억울했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보상이 없어서일까. 부러우면서도 약간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보상을 바란 걸지도 모른다. 같은 길을 걷고도, 아니 더 편한 길을 걷고도 더 좋은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약간은 섭섭함을 느끼게 한다. 좁은 길의 끝에는 어쩌면 지친 몸뚱이와 실망만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높은 위험도만큼 얻는 보상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중 몇몇 여행가들은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박수를 받는다. 그 밝은 모습을 보고 떠나는 여행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 사람이라고 모두 여행 후의 삶이 멋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더 혼란스러워져서 돌아오고 누군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속에서 분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두 갈래길이 나타나면 나는 좁은 길로 갈 것이다.

전망대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다가 날이 어두워졌고 나는 캄캄한 산길을 혼자 내려갔다. 캄캄한 산길을 홀로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산을 내려가도 끝없이 펼쳐져있는 갈대숲을 홀로 걸을 생각을 하니 막막해졌다.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을 그때, 내 앞에 다시 두 갈래길이 나타났다. 나는 다짐했던 대로 다리 아픈 길로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내려가는 도중 사람 두 명을 만났다. 한 명은 재무설계사였고 한 명은 퍼스널 트레이너였다.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휴가를 내서 친구와 함께 여행을 온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어느새 입구에 도착했고 차까지 얻어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재무설계사를 하는 형은 해병대 선임이었고 서울에서 밥 먹자는 얘기와 함께 명함을 건넸다.

좁은 길로 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었다. 좁은 길이 항상 옳은 길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좁고 험한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넓고 편한 길을 걷는 사람이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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