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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은 때

지치고 힘든 것인지 무엇인지도 모를 때

by 예제다운로드

출근을 하였다.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오늘 할 일을 메모장에 메모를 하고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를 보았다.


그렇게 모니터만 보았다.


내가 하는 업무가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일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리 어려운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난.. 잘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든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깊이 엄습한다.


퇴사 의사를 밝혔다.

지난 7월과 9월. 한 번은 사장님한테, 한 번은 직속 상사한테.


11월 1일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출근을 한다.

습관이란 무섭다.


그만둔다고 할 당시에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관계도 힘들고 일도 너무 힘들었다.


그 힘듦도 한순간일까?

그 순간이 지나간 지금. 내겐 아직 출근할 힘이 남았나 보다.

아니.


출근할 힘만 남았나 보다.



그렇게 꾸역꾸역

누구는 잡일이라고 부르는 나의 업무를 끝마쳤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를 버텨냈다.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퇴근길.

집에 가면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떠올린다.

조기 은퇴를 꿈꾸며

사이드 잡 또는 창직을 꿈꾸며

그렇게 집에 왔다.



집에 오니 주문하였던 택배가 도착하였다.

업무시간에 택배도착 문자를 받고 집에 가서 뜯을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난 그 택배를 쌓아놓고만 있다.

뜯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택배 상자를 감싸고 있던 테이프와 내용물을 감싼 뽁뽁이.

주소 정보를 담고 있는 라벨.

그 외 기타 쓰레기가 될 내부 포장.


뜯기도 전에 치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의욕이 넘치는 달라진 내 모습을 상상하였다.

정작, 나는 택배 상자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지치고 힘들 때 읽는 책이란 제목의 책이 떠올랐다.

지금 그 책을 읽고 싶다.

매우 아주 정말 많이 지금 당장.


그렇지만 읽을 수가 없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위로가 되었을 때, 그 당시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 그 책을 선물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지금 당장 그 책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그렇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압도되며. 무엇을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용케도 이렇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지금 나의 상태,

내 생각을 기록하기에는 수기보다 타자가 빠르다.

그렇기에 이렇게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예기치 않게 데이터센터가 불이 나서 나의 기록이 재가 될지도 모른다.

정말 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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