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직장 (2)

by 예제다운로드

말, 말, 말


이번 직장에서는 듣지 않아도 될 말을 상대적으로 많이 들은 것 같다.

크게 나에 대한 것과 다른 사람에 대한 내용으로 나눌 수 있겠다.


나에 대한 내용 중에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어서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같은 팀 내에서 차, 부장이 얘기하는 것을 들은 것이다. 이는 밖에서 사무실에 들어와 내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내가 없는 줄 알고 하는 말이었다. 하기 귀찮은 일이 생겼는데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귀찮은- 고민도 안 하고 나를 시키면 된다고 말하면서 서로 킥킥거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들어오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연기 아닌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여기서는 이런 위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일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앞서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귀찮은 일중 하나를 하느라 야근을 해야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따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두 사람이 내가 일하고 있는 자리에 와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저런 일 하느라 야근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하는 말. 내가 고개도 들지 않고 집중하면서 일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말을 바로 내 옆에서 하는 것이었다. 책상을 보고 있다고 해서 눈이 없고 귀가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 말들을 통해 이곳에서의 나의 위치와 그들의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고 훗날 퇴사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여러 말 중 인사 관련된 내용만 추리자면 권고사직과 퇴사(예정) 자에 대한 내용이 있다.

내가 이번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권고사직에 대하여 들은 것만 2명에 대해서 들었고, 실제 권고사직을 1명에 대해서 진행하였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내용을 알게 되었을까. 굳이 사원인 내가 알 필요 없는 인사에 대한 내용을 말이다. 이는 이사 이상의 임원급들이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가 드러난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나 같은 사원 따위가 무서워서 할 말도 못 해야겠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다. 권고사직의 대상이 본인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누구는 필요 없으니, 누구는 마음에 안 들어서와 같은 이유로 리스트에 오르내리면 말이다.


퇴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퇴사를 한다고 본인이 말하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말단 사원인 내가 알 정도면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퇴사를 선언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순간에 '얘'가 된다. '얘는 왜 퇴사한데?'부터 시작하여 '얘는 다 가르쳐줬더니 나가네'라고 하는 식이다. 물론 회사 입장(이사 이상의 임원) 입장에서는 실무자가 나가서 곤란해질 수도 있다. 직원이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하는 게 안 좋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불만을 상대가 없다고 해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의는 어리고 직급이 낮은 사람만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것이 바로 예의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결정한 퇴사


다섯 번째 회사에서의 퇴사 결정과 진행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 이틀 고민을 해보다가 회사에서 나에 대한 인식을 돌아보고 나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해보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직무를 계속하며 회사를 다니기가 싫었다. 나는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나오기 전까지 다른 분야로의 전직을 꿈꾸며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 기회가 생긴 곳이 내가 원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 직무는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직무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 시간 동안에 일해볼 만한 직무라고 생각을 해서 옮기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퇴사자들이 어떤 수순으로 퇴사를 하였는지 지켜보았기 때문에 퇴사 절차를 순조로이 진행할 수 있었고 퇴사를 선언하는 순간까지 말을 아꼈다. 그리고 이때를 위해 아껴놓았던 연차를 마치 말년병장 말차 휴가를 쓰듯이 몰아 써서 퇴사 선언 후 회사에 출근하는 일수를 최소화하였다.


이렇게 나는 다섯 번째 회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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