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걸어가자. 단언하지 말고
항상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중학생 때를 시작으로 PD, 영화감독, 소설가 그리고 최근에는 백엔드 개발자, 서비스 기획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 감정, 나를 닮은 등장인물, 결핍 등 나로부터 많은 것을 꺼내서 위로받기를 원했다. 작가는 매일 한 줄이라도 글을 써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서 글을 쓰기는커녕 매일 한 줄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열등감만 깊어갔다. 내 이야기를 쓰는데 남에게만 눈길을 주었고, '잘'쓰지 못하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배움에 있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한데 기가 눌렸고 나아가려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회피하면서 살았다.
대학을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전문대 영상과를 갔다가 반수를 해서 연극영화과를 갔다가 돈이 없어서 자퇴를 하고 일을 하는 중에도 배우지 않는 것이 두려워 중국어 학원을 다니고 알바를 하면서 전문대 야간반을 졸업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다. 배우는 게 남는 거다 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으니 치통 말고는 무서울 게 없다.'라고 얼마 전에 인스타에 글을 썼다. 그 경험들이 나의 영양소가 되었다는 건 인지하지 못하고 내게 깡을 주었구나 했는데 웬 걸? 31살 이 여름에 그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어 이제 너의 때가 왔다고 소리친다. 그동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했는데 그 근거를 찾았다. 멀리 있지 않았고 또 굉장히 멀리 있지도 않았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랐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서비스 운영파트를 맡게 되었다. 백엔드 개발자에서 기획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기회가 주어졌다. 근거도 찾았고 기죽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갈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천직이길 바란다. 평생직장은 없어도 역할은 있으니.
신발끈을 고쳐 묶는다. 풀리면 어때? 다시 묶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