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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전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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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Jun 01. 2023

마리의 검은 칼날

판타지 [시전 1화]

#  마리의 검은 칼날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기다릴 어머니가 생각이 난 마리가 조금 전 자신이 먹었던 것과 같은 장어구이를 포장했다.

장어구이가 담긴 작은 쇼핑백을 들고 아파트에 도착한 마리가 엘리베이터 앞 거울에 잠시 멈춰 섰다.

헝클어진 머리 뒤로 벌겋게 달아오른 뺨이 살짝 보였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밝은 보라색 블라우스에 반짝이는 단추가 출근 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밑단 일부가 밖으로 삐죽 흘러나와 있었다.

검은색 치마 속으로 흘러나온 블라우스를 서둘러 구겨 넣고 다시 한번 매무새를 살피던 마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장어구이를 들고 이제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3층에 빨간 불을 켜고 잠시 기다리던 마리가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다시 한번 자기 모습을 살필 무렵 6층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올라탔다.

이곳으로 이사오던 날 잠시 보았던 통장하고 그를 따라다니던 19층의 아주머니였는데 둘의 대화가 마리의 신경을 거슬렀다.

[집값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 아주머니 딸하고 둘이 산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이사 올 때 한번 눈인사한 게 전부라 나도 잘 몰라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래도 다행이네! 딸하고 함께 있었으면 어쩔뻔했어]

통장이 이야기중간 자신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못 들은 척했다.

어쩌면 귀에 꽂혀있는 블루투스 이어폰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10층에서 그들이 내리기 전까지 아주머니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고 그러는 동안 마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이 내려야 하는 13층을 알리는 기계음이 울렸음에도 선 듯 내리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던 마리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에 걸려있는 폴리스라인을 보는 순간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린 마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주저앉아 있던 마리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르던 고양이 사이먼처럼 기어 현관문을 통과했다.

낮게 깔려있던 폴리스라인을 피하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그것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낯선 사내의 움직임 뒤로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방에 퍼져있는 핏자국과 널브러진 가재도구들만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엄마] 마리의 등장에 분주하던 사내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엄마] 황급히 일어선 마리가 사내 뒤에 쓸쓸히 누워있는 어머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낯선 사내의 저지로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거 놔요! 엄마~!] 아무리 울부짖어도 사내의 완력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울부짖는 마리의 음성이 집안을 매웠고 일부는 복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증거가 없다니요? 엄마 손에 있던 단추 그 자식 것이 맞아요!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어요?] 

[당일 이 중대 씨는 알리바이가 있어요. 증인도 있고] 

[말도 안 돼! 그 사람들 한통속이라고요!] 

[그걸 확증할 만한 증거도 없어요. 지금으로는] 

[그러면 우리 엄마는요? 우리 엄마는 어쩌라고요.]

마리가 소리치며 울부짖자, 당황한 경찰이 주변을 힐끗거리더니 고개를 모니터 밑으로 숨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리를 달랬다. 

[목소리 낮추세요.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요.] 

[지금 그게 문제인가요? 쪽팔린 게 문제냐고요] 이 마리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자, 담당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 마리의 팔을 잡고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도대체 왜 그래요?] 

[몰라서 물어요?] 

[증거가 없다고요 증거가!] 

[진짜 그 자식이 그런 거 맞다고요 툭하면 찾아와서 엄마 때리고 그랬다고요] 

형사의 짜증 섞인 한숨이 마리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계이치 않았다. 어쩌면 포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경찰서를 나오면서 마리는 여전히 분노가 치솟고 있었고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이 중대를 찾아내 단죄하리라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법 집행 기관이나 사법 체계의 능력에 회의감을 품었고 스스로 법을 실현하고 복수하겠노라 다짐했고 그런 다짐을 한 마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1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검은색 챙 모자를 이래로 눌러쓴 마리가 건물의 그림자와 몸을 포개고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마치 숨은 그림 찾기의 마지막 한 조각처럼 쉽게 찾아내지 못하고 지나쳤다.

아래위로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탓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분리수거를 위해 건물 밖에 내놓은 크고 작은 재활용품들 사이에 서 있던 마리의 모습이 마치 분리수거용 재활용품의 그림자 같기도 했기에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단단히 움켜쥔 단검의 칼날마저 검은색으로 칠한 마리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이날의 숨바꼭질은 이미 마리의 승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덩치 하나가 먼저 쓰러진 사내의 위로 포개지듯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까지 이중대가 자신의 곁을 지키던 덩치들의 죽음을 보는 순간 [헉] 하며 소리 낼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마리가 얼굴에 묻은 선혈을 닦아내며 중대의 곁으로 다가오자 그제야 이마리의 존재를 알아봤다.

[마리!] 

[그래, 나야 왜! 그랬어? 이유는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한 게 아니야.] 

[거짓말! 이니셜을 세긴 단추는 어디에도 없어 그건 처음부터 당신 것이었거든] 

[딸 이러지 마!] 

[닥쳐! 함부로 딸이라고 부르지 마. 한 번도 당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24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당신과 살아본 경험이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 

[아무리 약물중독에 걸려있어도 유일한 가족이었어 그마저도 당신이 가져갔지만 말이야. 대가를 치러야지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흥분한 이마리를 밀쳐낸 이중대가 몸을 일으켜 빠르게 도주를 시도했지만 이마리의 칼이 더 빨랐다.

달아나는 이 중대의 왼쪽 다리에 칼날이 박히자 힘없이 주저앉던 중대가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마리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오른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베인 중대가 조금 더 기어 달아나 봤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처음부터 변명 따윈 필요 없었어! 어차피 생물학적 관계 말고는 없었던 사이였잖아.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관계였어 가끔 찾아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말고는 볼일도 없었잖아. 안 그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늦었어. 용서는 엄마에게 했어야지 잘 가!]




# 준범의 어두운 과거


[얘들아! 이러지 마!] 

[얘들아! 이러지 마!] 

[돌려줘] 

[돌려줘] 

킬킬거리는 아이들 틈에 영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분주하다.

영희를 에워싼 일진 녀석들의 이번 타깃은 영희로 정해진 듯하다.

영희의 말을 계속 따라 하던 녀석이 슬슬 흥미를 잃었는지 가지고 있던 영희의 가방을 내동댕이치고는 발로 ‘툭’ 걷어찼지만, 여전히 돌려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무릎 꿇고 빌어 보라고~] 

[이러지 마!~] 

[안 되겠다.. 얘들아!~ 이 고아 년 버릇 좀 고쳐줘야겠다.] 

킬킬거리던 학생 중 두 명이 영희 뒤로 돌아가더니 양손을 하나씩 잡은 뒤 공사장 안쪽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다.

발버둥 치던 영희의 오른쪽 신발이 벗겨졌지만, 누구도 주워줄 맘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뒤따라오던 미진이 뒤집어진 채 나뒹굴던 외로운 영희의 신발을 건물 밖으로 힘껏 걷어찼다.

[야! 이영희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왜? 이래….] 

[야! 내가 물어보잖아! 이게 죽으려고... 야! 그냥 좀 맞자 맞다 보면 기억나겠지.] 

그때였다. 무리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던 준범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해!] 

[아이 깜짝이야. 야! 넌 또 뭐냐?] 

[그만하라고] 

[하~ 뭐냐 너 제랑 사귀냐?] 

[그만하자]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같은 고아라고 마음이 끌리냐? 그런 거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앙칼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지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또 다른 무리가 준범을 에워싼다.

준범이 아무리 싸움꾼이라 하더라도 족히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상대를 그것도 무장이 돼 있는 상대를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야! 박준범 계속 떠들어봐!] 

[야! 신명희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나! 박준범이야!] 

[하하! 하하하! 그래서? 그래서 뭐? 야! 개준범이 너도 죽고 싶지!? 그런 거지? 짖어봐! 그럼 살려줄게 이래서 부모 없는 것들은 상대하면 안 되는 거야]

순간 준범의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눈빛은 오히려 붉게 빛났다.

움켜잡은 두 손의 심줄이 바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어둠 사이로 이형수의 얼굴이 보였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 앞의 일진 무리를 한 명씩 쓰러뜨렸다.

아무리 무장한 일진이라도 상대는 여자였다.

힘으로 준범과 이형수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준범과 이형수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서른 명은 몰라도 열다섯 남짓으로는 이들을 상대로 이길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이형수와 준범은 마치 춤을 추듯 날렵했고 둘의 움직임은 흡사 대호연(大虎燕) 같았다.

큰 호랑이 두 마리가 제비처럼 빠르게 움직이자 서른을 넘던 일진 무리가 삽시간에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던 이형수가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준범을 향해 걸어오며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야! 박준범 이제 빚 다 갚았다.. 다신 보지 말자]




# 환영자 (歡迎者)


종합병원 응급실에 환자 하나가 실려 왔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야!] 

[모르겠어요 요즘 이런 환자 너무 많아요.]

[경찰에 신고는 했나요? ] 

[예 아마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제 말 들려요?] [소용없어요 이송 중에 뺨도 때려봤어요]

순간 의사가 구급대원을 노려본다. 

[어쩔 수 없었어요, 확인은 해야 하잖아요]

의사는 말없이 한숨을 내쉰다. 

[일단 병실로 옮기세요.] 

[예, 자~ 서두릅시다.]

이번에는 20대 남성이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환자들이 들어온다.

하나같이 멍하고 묻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뭐랄까 뭐에 홀린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영혼이 없는 사람 같다.

살아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빈 껍데기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환자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처음엔 젊은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 들어 50대 어떨 땐 노인들도 간혹 같은 증상으로 실려온다.

눈매가 갸름하고 왼쪽 눈썹이 반으로 잘린 사복 차림의 형사가 다급히 뛰어와 이제 막 이동을 시작한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늦었군...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이번에도 젊은이네... 젊은 사람만 그러는 건가?] 이 형사가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얼마 전부터 나이가 다변화하고 있어요]

[이유를 모르겠네...]

[혹시 다른 증상이나 변화? 뭐 참고할만한 특이점이 있나요?]

[아뇨] [뭐든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 형사와 최 박사는 새로 들어온 환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분명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일단 사건접수가 된 이상 찾아봐야지요] 

[휴~]

이 형사의 깊은 한숨에서 그간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피곤하시면 잠시 쉬었다 하시지요!]  

[하하하! 최 선생님 깨서도 피곤하다고 환자 대충 보시지 않잖아요] 

멎적어하는 최 박사를 뒤로하고 이 형사가 돌아 나왔다.

이 형사가 차에 타려고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예 근처에 있으니 곧 가겠습니다]

멈춰진 이 형사의 차량 뒤로 PC 방이 보인다.



[드디어 현장을 보게 되는군] 

[언제부터 이러고 있습니까?] 

[오늘 온종일 여기 앉아서 게임을 하고 계셨는데 계속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1시간 전부터 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봤는데 멍하니 화면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처음엔 휴대전화로 동영상 보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 청소하려고 갔다가 힐끗 봤는데 저러고 있잖아요.]

[그때 마침 형사님께서 주셨던 명함이 생각나서 연락드렸어요] 

[119 부르겠습니다.]

[어라! 이 사람은!] 

[야! 준범아!]

 [이 자식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야! 정신 차려]

10년이 지났지만 이형수는 준범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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