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박사의 노트
준범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어디를 보는 건지 초점도 흐려져 그저 눈만 깜빡거리고 앉아있었다.
손에 든 휴대전화기에는 요즘 젊은 층이 많이 한다는 퇴마록 게임이 돌아가고 있었으며, 자동사냥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캐릭터는 레벨 82의 전사 캐릭터로 서버 내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컵라면과 마시다가 만 커피잔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말고는 아무리 봐도 특이한 사항은 없어 보였다.
주변이 시끄러워 나간 것인지 애초부터 그런 것인지 주변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 CCTV 있지요?]
[예!]
[협조 부탁합니다.]
[그건 사장님 오셔야 하는데요... 아르바이트생이 뭘 알겠어요?]
[그럼 사장님 언제 오시는데요?]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119가 도착했다.
준범이 발해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이 형사는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
CCTV를 확인하고 있던 이 형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머리만 나오네.]
[이 화면 말고는 없나요?]
[여기 있기는 한데... 좀 멀어서요.]
두 번째 화면 속 준범은 분명 휴대전화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기 게임을 굳이 PC방에서 한다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PC방에 설치된 칸막이 때문에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모니터와 휴대전화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몰입하는 듯했다.
옆 테이블에 노란 머리를 한 사내가 간혹 힐끗거리더니 준범 곁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이형사가 팀원들과 마주하고 회의가 한창이다.
[주변에 CCTV부터 확보하고 몽타주 나오면... 아니다. 우선 CCTV 먼저 보고 결정하자.]
[자 다들 움직이자고] 갑자기 분주해진 이 형사와 팀원들이다.
그 시각 발해병원 탁 터 최는 준범을 맞이하고 있었다.
까만 뿔테의 커틀러엔 글라스 뒤로 짙은 눈썹이 미간을 사이에 두고 맞다을듯 서로를 향해있다.
짧은 투블록의 헤어스타일 밑으로 검은 청진기가 당장이라도 최박사의 목을 조일 듯 아슬아슬하다.
피로감을 느낀 최박사가 연신 자신의 목덜미를 주물러가며 차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몇 달만 더 지속한다면 수용인원이 초과되겠는데...]
최 박사는 진료실에 앉아 준범의 차트를 보며 중얼거린다.
[어떤 관계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짧은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정형외과 노우진 선생이 들어왔다.
[뭐 해? 요즘 정신과 정신없다며 하하하!]
[설마 지금 그거 유머야?]
의대 동기인 두 사람의 대화가 정겹다.
[너 본 지도 오래되고 해서 와 봤다.]
우진은 책상에 놓여 있는 준범의 차트에 눈이 간다.
[어! 이 환자... 정신과에 들어왔어? 아주 다~ 뺏어가는구먼!]
진담 같은 농담을 던지며 차트를 넘기는 우진을 바라보던 최박의 눈썹이 반쯤 감겨있던 눈을 끌어올렸다.
[알아? 어떻게?]
[얼마 전부터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찾아오던 환자야.]
[엄지손가락?]
[응 요즘 들어 그런 환자 부쩍 많아졌어.]
[그래!]
최 박사는 방금 들은 이야기들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최 박사는 갑자기 늘어난 정신병 환자들을 보며 분명 알 수는 없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의구심을 갔고 있었고 그때마다 특이점들을 노트에 적어 넣었다.
하지만 빼곡히 적힌 노트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키워드들만 난무할 뿐 어느 것 하나 관계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박사가 적어 넣은 많은 특징 중 엄지손가락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가자 나도 배고파 죽겠다.]
손가락과 정신병의 관계는 아무리 짜 맞추려 해 봐도 둘의 상관관계는 없어 보였다.
#시스템의 소환
시스템에게 소환된 준범이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여긴 어디야?]
주위를 둘러보지만,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다.
조심히 한발 한발 내디뎌 보지만 내딛는 걸음이 불안하다.
손으로 휘저어 보지만 아무것도 닫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그만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뭐가 보여야 움직일 텐데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준범은 그 자리에 주자 앉았다.
이번엔 촉각을 이용해 바닥을 더듬어 보았다. “흙” 분명 흙이었다.
[흙이 있다고! 그럼 여긴 산인가?]
도심이면 아스팔트 같은 느낌일 거고 건물 안쪽이면 타일이나 대리석 같은 반질거리는 질감일 텐데 이곳은 거칠고 손에 묻어나는 느낌이 모래처럼 고운 느낌은 아니라 흙 같은 거친 질감이었다.
조금 더 더듬어 보니 이번엔 풀이 만져졌다.
산이나 들판임이 확실해 보였다.
인간이 앞을 볼 수 없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기관이 발달한다.
알려주지 않아도 살면서 아니 눈으로 볼 수 있었을 때의 감각을 기억해 촉감과 후각 그리고 청각 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다.
준범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손과 귀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촉감에 의존한 체 주변 사물의 정보를 얻어가고 있었다.
이미 이곳이 어디인지 확신을 했지만 조금 더 더듬어가며 서서히 앞으로 기어가고 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선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더듬어 가고 있을 때 조금은 다른 촉감이 느껴졌다.
물은 아니고 액체임은 확실했지만 끈적이고 미끈거리는 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액체가 흙과 함께 손에 들러붙는 느낌이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하는 느낌 같았다.
습관적으로 향을 맡아보자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고 순간 몹시 기분 나쁜 상상을 했다.
벌떡 일어나 바지에 대충 닦아내며 방향을 바꾸려는데 발에 둔탁한 것이 차였다.
[뭐지?]
다시 바닥에 손을 더듬으며 조금 전 발에 차인 그것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 느낌 더럽네]
[뭐야! 여기 아무도 없어요]
[아이 씨 몰라!]
준범이 포기한 듯 바닥에 누워 버렸다.
눈을 뜨면 사방이 흰색이고 눈을 감으면 사방이 어두운 색이었다.
[아나 꿈도 더럽네]
준범은 다시 눈을 감았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눈을 떴지만, 여전히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순간 불안했다.
[뭐야, 이거 꿈 맞아?]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뭐야, 뭔데, 어이~,여보세요~,야 ~]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바닥을 더듬기 시작하자 아까 그 끈적이던 액체가 다시 만져진다.
[에이 제기랄 뭐냐고 촉감 진짜 구리네...]
그때 위쪽에서 파란 불빛이 짧게 번쩍거렸지만 너무 밝은 빛이라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간 눈에 들어오는 주변 환경에 머리가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숲도 들판도 아니었으며 마냥 넓기만 한 대지 같았다.
하지만 더욱 소름 돋는 건 주변에 쓰러져있는 시체와 동물 주검들이 찰나의 순간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준범은 너무 놀라 주자 앉았다.
[헉~이게 다 뭐야?]
아주 짧은 시간에 본 것이지만 준범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현실성 없는 상황이라 준범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왔다.
[으으으]
[거기 누구요?]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 대답 대신 신음과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준범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어갔다.
손에 잡히는 것들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곳에 다다랐지만, 더는 신음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흔들어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 제기랄 뭐냐고 ~ ] 준범의 거친 욕설만이 되돌아올 뿐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 시각 이 형사는 노란 머리 사내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PC 방을 나간 후 사내는 오토바이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는데 특이한 것은 좁은 골목길에 잠시 들렀다가 3~4분 단위로 계속 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저 자식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아주 발발이 이구먼]
이형사가 모니터 속 노란 머리를 바라보며 치솟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입 밖으로 토해냈다.
[먼저 잡아 족쳐 버릴까?]
계속되는 이형사의 거친 표현을 듣고 있던 팀원 중 한 사람이 눈을 흘기며 답했다.
[그러다 지난번처럼 무고죄로 고발 들어와요! 아시면서 또 이러시네 그러지 마세요! 이 형사님 안 돼요 안 됩니다. 아셨지요?]
그렇게 노란 머리의 동선을 따라가며 CCTV를 확인하다 빌라 옆 골목 CCTV에 녀석의 이상한 움직임을 목격했다.
[저 자식 저거 마약 아니야?]
[딱 하는 짓이 마약배달 하는 것 같은데...]
노란 머리 사내가 에어컨 실외기에 무언가를 넣더니 그곳의 장소를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이 CCTV 화면에 찍힌 것이다.
[최 형사 일단 현장 확인이 먼저다.]
[움직여 봅시다.]
형사들이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 시각 노란 머리는 일을 마치고 또다시 인근 PC 방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현장에 도착한 이형사와 일행이 모니터 속 실외기에서 작은 검은색 봉지를 끄집어냈다.
[이 형사님 마약 맞습니다.]
[그래! 그럼 수배 때리고 마약반에 연락해! 아~ 그전에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한다.]
PC 방에 들어간 노란 머리 사내의 휴대전화에 문자와 왔지만 사내는 화장실에 가느라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모니터 앞에 휴대전화를 던져두고 화장실로 갔기 때문이다.
사내가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자신 보자 먼저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더니 다급히 일어나 출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막 PC 방을 나가려는데 건물 입구에서 형사들과 맞닥트렸고 사내가 달아나려 했지만, 형사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 제기랄 놔!]
노란 머리 사내가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취조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마약반에서 녀석을 넘겨 달라고 했지만, 이 형사는 조사가 먼저라며 불응하고 있었다.
[아니 사이버수사팀이면 그쪽 일이나 하시지 왜? 이러세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누가 안 준답니까! 나도 꼭 알아야겠습니다.]
[아니 그리고 대신 잡아줬으면 고마워해야지 말이야 사람들이 경우가 없네]
이 형사가 취조실로 들어가며 한소리를 했다.
[야! 우리 쉽게 가자 아까 고릴라 PC 방에서 이 사람 봤지!]
CCTV화면을 가르치며 이 형사가 말을 이어갔다.
[이 사람한테 무슨 짓을 했어?]
노란 머리가 놀라는 눈으로 이 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뭘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몰라요! 그냥 지나간 건데... 진짜예요!]
[야! 네가 옆에 있을 때 이 빛은 뭐야 이레도 발뺌할래]
[아 진짜예요, 그 자식 옆에서 대기 타고 있었는데 그 자식이 얼마나 욕을 하던지 손 좀 봐주려고 했는데 때마침 주문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냥 배달 나갔어요]
[그럼 이 빛은 뭐야?]
[몰라요 저도 도대체 뭘 하는데 그리도 욕을 하는지 궁금해서 힐끗 봤는데 PC로 퇴마록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자동사냥을 하면서 무슨 욕을 그리하던지... 아무튼, 그때 파란빛이 나긴 했는데 내가 바빠서 그냥 나왔어요.]
[이것도 시간싸움이라 빨리 배달해 줘야 다음에 또 이용하지요]
[그래 자랑이다 이 자식아]
[뭐 다른 건 없어? 너 거짓말하면 아주 죽여버린다.]
[아이 제기랄 몰라요]
서로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며 취조실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이형사는 얻은 것이 없었다.
단지 같은 시간에 동일장소에 있었을 뿐 특이사항은 없어 보였다.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심통 난 이 형사가 노란 머리 사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똑바로 앉아]하며 공연히 큰소리를 질렀다.
취조실을 나오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 형사
[와 미치겠네 도무지 모르겠네 이런 찝찝한 기분... 분명 뭔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