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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전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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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Jun 09. 2023

새로운 세계

판타지 [시전 5화]




식사를 마친 최박사와 정형외과 노우진 선생이 병원 내 옥상정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반쯤 마시 다만 커피잔을 비우며 노우진 선생이 최박사를 향해 물었다.

[요즘 정신과병동에 무슨 일 있냐? 하루가 멀다 하고 환자들이 늘어나니...]

장난기 많은 노우진이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묻자 최박사는 마치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렇다고 친구의 면전에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오로지 최박사 혼자만의 생각이지 노우진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장난기 가득한 웃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네가 정신과 지원 좀 해라!] 최박사가 한차례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뱉은 후 계속 말을 이었다. [미치겠다 진짜... 아니 모든 것이 정상이야 그런데 의사소통이 안 돼! 하루종일 멍 ~ 해있어 귀신에 홀린 사람들처럼, 감정 변하도 없고 뭐랄까 마치 껍데기만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뭐 암튼 그래, 이유가 뭘까?] 진지한 표정으로 한바탕 그간의 감정을 쏳아내는 최박사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진이 최박사의 양쪽 어깨를 자신이 서있는 방향으로 돌려세우고 시선을 맞추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최박사의 물음에 답 하였다.

 [어이 의사선생 너님이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허긴 나도 요즘 이상한 환자들 투성이다. 엄지 손가락이 아프다고 찾아오는 환자가 부쩍 늘었어. 아 맞다! 아까 네가 보던 그 환자도 내가 보던 환자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지손가락과 정신병 환자는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잠시 대화가 단절되는 틈을타 음악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놀란 두 사람이 음악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옥상벤치에 앉아 까르르 거리는 한 무리의 간호사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진이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최박사의 시선을 돌려세웠다.

[아! ~ 맞다! 이제야 생각이 나네.] [아까 그 차트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왜?] [확인해 보고 이야기해 줄게] [왜? 뭔데] [야 빨리 마셔 차트 다시 한번 보자] 우진의 등살에 최박사는 가지고 있던 커피를 마실틈도 없이 서둘러 죄박사의 진료실로 향했다.

[맞네!] [뭐가?] [이 사람들 정형외과 진료받던 사람들이야.] [그것도 모두 엄지손가락 아프다고] [뭐! 진짜?] [그렇다니까. 그럼 이 사람들 모두 정신병동에 있는 거야?] [응] [왜?] [몰라! 그래서 환장하겠어 이유를 모르니...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엄지손가락이 아프다는 거야?] 우진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최박사가 묻자 깊은 한숨을 내쉰 뒤 한심하다는 말투로 자신을 방문했던 환자를 회상하던 우진이 답했다. [칫! 휴대폰을 너무 많이 봐서 손가락이 아프시단다. 아주 팔자가 늘어지신 계지 인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휴대폰을 많이 보는데 왜? 엄지 손가락이 아파?] 정형외과 노우진 교수가 왼쪽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들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가로방향으로 벌리고 검지손가락은 수직으로 세웠다.

그리고 중지를 반쯤편 자세를 위지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를 엄지손가락 위에 올려두었다.

화면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뒤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지가 핸드폰의 뒤를 받치고 있었다.

우뚝 선 검지 손가락이 세로로 긴 핸드폰의 중심을 잡아주자 하중이 엄지손가락에 실렸다.

[자~ 이렇게 오랜 시간 있으려니 엄지손가락에 무리가 가겠지 핸드폰의 하중이 모두 엄지손가락에 쏠리니까 도대체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엄지손가락이 아플까?]

우진의 시범에 닥터최는 드디어 공통점을 찾았다는 생각과 설마 하는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공통점이라 조금 더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닥터최가 들고 다니던 노트에 조금 전 정형외과 노우진 선생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을 적어 두었다.

수첩을 접어 입고 있던 흰색가운뒤로 드러난 파란색 바탕에 작은 좁쌀무늬 점이 박혀있는 드레스셔츠의 앞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시 고민하던 최박사가 이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해병원 닥터 최입니다.] [의논이 필요한데 잠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공통점 하나를 찾은 듯합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형사가 다급한 모습으로 닥터최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뭡니까? 뭘 찾았다는 겁니까?] [형사님 숨좀 돌리시지요] [아닙니다. 전 그게 더 급합니다.]

[우선 형사님에게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예 말씀 하시지요] [형사님은 요즘 빈번한 몽환 환자의 현장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어 몽환 환자라고 이야기했지만 이형사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아뇨... 아니지 예! 한번 오늘 한번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지요?]

[아 ~ 오늘 처음 보셨다면 아직 공통점을 찾지는 못하셨겠네요.!]

[그렇다면 제가 이야기를 해 드려도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뭔가요? 최 선생님이 찾으셨다는 공통점이....?]

[사실 오늘도 네 명의 몽환 환자가 들어왔어요. 저 역시 형사님처럼 공통점을 찾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찾아보았답니다.] [그래서요?] [그러던 중 정형외과 동기가 제 차트를 보더니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요?] 닥터최가 이형사에게 차트를 내밀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형사님!] 오늘 들어온 환자들의 차트를 이형사 쪽으로 내밀어 보이며 [이 환자들 정신병동에 오기 전 한 가지 공통적으로 다녀온 곳이 있었어요.] [거기가 어딘가요?] [정형외과입니다.] [예? 정형외과요?]

[예!] [이형사님 오늘 들어온 몽환병 환자 특이한 점 없던가요?] [모르겠던데요. 특이사항 없었어요.] [혹시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던가요?] 최박사의 말에 놀란 이형사의 눈썹이 처진 눈을 끌어올렸다. [아니 그걸 어떻게...]



   

# 새로운 세계


준범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또 한 번 파란빛이 번쩍였다.

한번 겪었던 강열한 빛이었지만 이번에도 너무 강렬해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빛이 최대치에 도달하고 사라지기 전 한차레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주변상황을 알아야 했다. 준범은 필사적으로 눈에 담으려 했지만 여전히 너무 짧은 시간 탓에 정확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혀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이 평소의 차림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뭐지? 어디서 봤는데...]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분명 pc방에 있었는데...] 그 순간 준범이 무언가를 생각해 냈다.


# 새로운 시작


[갑옷?], [강철 부츠?] [설마... 이걸 왜! 내가 입고 있지?] 살면서 한 번도 입어본 적 없고 신어본 적 없는 것들의 질감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확신이 필요해... 한 번만 더 번쩍여라. 이번엔 꼭 보고 말 거다.] 준범이 각오를 다졌다.

불규칙하지만 분명히 푸른빛이 생기긴 한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수 박에...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한참의 시간이라고 했지만 1시간이 지난 건지 2시간이 지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준범의 각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의지력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도 깜박거리지도 않을 기세였지만 간혹 흘러나오는 하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력이 흐트러질 무렵 또한 차례 푸른 발광이 빛났고 준범은 찰나의 시간을 노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분명 파프리온의 갑옷과 장철부츠였다.

[퇴마록] [이건 게임 속 캐릭터가 입던 장비인데...] [게임이야 현실이야?] 더욱 혼란스러웠다.

게임은 게임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준범은 현재의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모두 게임 속 자신임을 알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박준범] 준범은 사진의 뺨을 쳐 보지만 아프기만 할 뿐 상황이 변하지는 않았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준범이 소심한 목소리로 [라.. 이.. 트.. 온]이라고 하자 갑자기 자신의 주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게임이라고!] [현실이라고?] [미쳤네 이거] 준범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준범은 자신의 마법으로 생성된 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사의 마을?] 그곳은 용사의 마을이었다.

주변에 죽어있는 고불린과 셀브르들 그리고 조금 전 신음하던 초보 캐릭터 모든 것들이 용사의 마을임을 준범은 알 수 있었다.

용사의 마을은 초보 용사가 최소한의 전투가 가능할 때까지 길러주는 곳이다.

이런 곳에 lv82의 준범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출범하는 몬스터 들은 준범을 위협할 수 없다.

아마 이곳의 모든 몹들이 한 번에 준범에게 덤벼들어도 준범에게 대미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준범은 그런 레벨이었다.

준범은 다른 것들 역시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인벤토리]라고 이야기하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장비들과 소모품들이 허공에 그것들의 사진과 함께 떠올랐다. 자주 보았던 가상의 창고 인벤토리가 한눈에 들어오자 이젠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준범은 현실의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확실한 건 게임 속에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상황은 이해했지만,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현재 상황을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준범은 확신을 위해 사냥을 해 보기로 했다.

허공에 떠있는 인벤토리에서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장검 한 자루를 끄집어내며 머리 위에 있는 hp와 mp의 수치를 확인한 준범이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인벤토리를 닫았다.

쓰지 않을 인벤토리를 허공에 계속 뛰어놓으면 시아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용할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낯익은 공간으로 빠르게 뛰어가는 준범이 발걸음을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서 준범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흡혈고불린이 준범을 향해 뛰어왔다.

1m의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흡혈고불린이 뛰는 모습이 귀여워 보일 수 있겠지만 크기와는 다르게 돼지코처럼 들려있는 코에서 씩씩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자신의 피부처럼 빨간 검을 들고 준범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에 준범은 긴장하며 전투준비를 한다.

흡혈 고불린이 준범에게 칼을 휘두르기 전에 준범이 먼저 장검을 휘둘렀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흡혈 고불린이 쓰러졌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준범을 상대할만한 몬스터는 이곳 용사의 마을에서는 없다.

그걸 준범 역시 알고 있었지만, 실험해 본 것이다.

한 번 더 확신을 위해 다시 한번 몬스터를 찾기 위해 몇 걸음 더 걸어갈 때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넬'이라는 몬스터가 커다란 곡괭이를 들고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이었다.

‘넬’의 생김은 꼭 곱사등이 같다. 온몸은 하얀 털로 뒤덮여 있고 2족 보행을 하는 녀석이다.

자신보다 큰 서양 낫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는데 어릴 적 외국영화를 통해 봤던 바야바의 모습과 유사했으나 바야바와는 다르게 넬은 곱사등이였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저 녀석의 공격쯤은 막을 수 있다.]

준범은 두려웠지만, 이번엔 얻어맞아 보기로 했다.

[죽든 살든 어떻게든 되겠지] ‘넬’이 무시무시한 커다란 낫으로 준범의 몸을 베어버렸다.

준범은 너무 두려워 두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있었다.

[뭐야! 왜 공격을 안 해?] 준범이 눈을 떠보니 ‘넬’이 자신을 계속 공격하고 있지만 준범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 준범의 생각이 맞았다.

[뭐야 계속 치고 있었던가야?] 준범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게임이다 이거지] 하하하! 준범은 조금 전의 두려움을 단번에 잊어버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속 준범은 지존 급 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왜? 이곳에 자신이 있는 것인지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다시 주변이 하얀색으로 변하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범은 당황해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의 어떤 것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트온] [인벤토리] 준범은 다시 라이트를 켜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러 가지 주문서들이 보기 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순간이동주문서, 축복받은 순간이동 주문서, 귀환 주문서, 마왕성 1층 주문서...

그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혈맹귀환 주문서였다.

‘혈맹!’ 어쩌면 이곳에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맹 귀환 주문서를 사용하니 준범이 순간이동을 했다.

아주 낯익은 장소였다.

그곳은 준범이 게임 속 자신의 아지트로 혈맹 원들과 자주 들러 쉬어가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는다. 만약 진짜 게임 속이라면 제일 안전한 곳이었다.

[재발 누구라도 좋으니 아무나 좀 와라.]

준범은 이곳에서 혈맹 원이 오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게임 속 준범이 적응하고 있을 무렵 발해병원 최 박사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정형외과 동기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시간 휴대전화를 이런 식으로 잡고 있으면 엄지손가락에 하중이 실려 염좌가 일어납니다.]

[근간에 들어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손가락 염좌 때문에 정형외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은 장시간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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