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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전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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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Jul 05. 2023

최 박사의 고민

판타지 [시전 22화]

준범과 두호를 제외한 일행이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최 박사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리에 앉아 왼손으로 턱을 괸 최 박사의 긴 한숨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 속 글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일기처럼 적어 넣은 글들은 그동안 자신이 적어두었던 기록이기도 했다.

6월 28일 요즘 들어 몽환 병 환자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이 자주 일어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신을 차린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죽음을 맞기도 한다. 

부검해 보았지만, 사인이 분명하지 않다. 

그저 멍하니 앉아있다가 스르르 녹아내리듯 사망한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말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먼저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00% 정확한 건 아니다. 

정확하다면 처음 들어온 순서대로 1.2, 3, 4 순으로 사망해야 하지만 1.2, 4, 3 혹은  2, 3, 1, 4 같이 불규칙하다. 

그런데도 먼저 들어온 순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통계적일 뿐 큰 의미는 없다. 

조금 전에도 한 사내가 녹아내리듯 사망했다. 

물론 정확한 사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몽환 상태의 환자들은 다인실에서 관리하고 있다. 

일반 환자들과는 다르게 불평불만을 한다든가 어떤 것들을 요구한다든가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동선을 줄이고 한 번에 여러 명을 추적관찰 하기엔 1인실보다는 다인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환자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마저도 이상해지질 않는 것만 같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최 박사가 흩어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다.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최 박사가 답답한 마음을 토해내듯 긴 호흡으로 들이마신 공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후 우우 이제야 살 것 같네] 건물 옥상에 올라온 최 박사가 건너편 건물의 옥 상정원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옥상정원을 바라보더니 이번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길 여러 번 반복하던 최 박사가 혼잣말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이야기하였다.

[내려가야겠다 내려가자] 옥상을 내려와 집무실로 향하던 최 박사가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병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병실을 차례도 돌아보던 그가 창문 너머로 환자 한 명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몽환 병 환자에게는 나올 수 없는 두리번거림이었기에 서둘러 병실로 들어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봐요! 정신이 드십니까?] 

[여기가 어디지요?] 

[병원입니다] 그러자 사내가 껄껄거리며 웃더니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진짜야! 와! ~ 이거 미치네!] 걱정스러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던 최 박사를 향해 사내가 말을 이었다. 

[저는 게임을 하고 있어요. 아니지 게임 속에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해하시기 힘들겠지만 믿어주세요.] [그곳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어요. 지금은 퀘스트 중이고 잠시 허락된  보상으로 이곳에 올 수 있었어요.] 

[보상으로 받은 시간이 고작 30분이라 다시  돌아가야 해요] 

[이곳에 오기 전에 찢어진 편지에 휴대전화가 꺼지면 이들도 죽는다는 글을 보았어요. 전 그걸 알리고 막기 위해 30분을 써야 합니다. 제 전화기 어디 있지요?] 최 박사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알려야 했다. [지금 이곳에는 없어요. 경찰이 수거해 갔어요.] 

[어디 경찰서요? 휴대전화 충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저 죽어요.] 다급해하는 환자를 보며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고 있어요. 제가 전화할게요.] 

[얼른 지금 해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최 박사가 서둘러 이 형사에게 전달하였다. 

이 형사와 통화를 마친 후 사내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주었는데 게임 용어가 낯설었던 최 박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화 혈맹이라는 것과 켑을 만났는데 현실이름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켑이라는 사내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자신이 사용한 30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 다고도 했다. 

이후에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본인의 안녕을 전해달라고도 했으며,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휴대전화의 전원을 유지해 달라는 당부를 끝으로 다시 몽환 상태에 접어들었다. 

사내가 몽환 상태로 돌아간 후 2시간이 체 지나지 않았는데 사내의 말처럼 여기저기에서 환자들이 몽환 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지어  공조하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 쪽에서도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최 박사는 다시 이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까 전하지 못했던 남은 이야기들을 전달하였으며, 혹시 일어날 다음의 환자들에게 물어볼 말 들을 미리 준비하는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목록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 박사가 이 형사에게 그들의 휴대전화를 병원으로 가져다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몽환에서 벗어나면 모두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았으며, 그 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어 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퇴마의 탑 30층 보스는 핼바운드이다.

핼바운드는 준범 일행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준범이 단독으로도 제거한 적 있는 그런 녀석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이 녀석은 무리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강한 공격을 하는 습성이 있다.

마치  호랑이나 사자 같은 고양잇과 동물들이 사냥할 때의 모습처럼 몰이하다 무리를 이탈하는 녀석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맹수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핼바운드는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데 강한 공격을 할 때는 머리가 3개로 나뉘며 각기 다른 얼굴엔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서 한번 물리면 약한 인간은 단번에 살 점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미 10층의 보스 메두사를 제거한 일행이기에 10층에서 19층까지는 무리 없이 포털을 통해 이동할 수 있었지만 20층에서 시작해 보스의 방 30층까지의 길도 그리 만만하진 않다.

물론 준범을 비롯한 일행 모두가 뛰어난 실력자 이기 때문에 보스가 아닌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1:1 구조로의 전투에서는 누구도 밀리지 않는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20 층대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는 유니콘이다.

이들은 무리 지어 공격하지 않는다.

그 또한 일행에게는 호재였다.

다만 유니콘의 모습이 어둠과 뒤섞여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자체 공격력이 크지 않았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19층에서 20층으로 올라가기 전 준범이 모두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20 층대의 몬스터가 약하고 무리사냥을 하지 않으니 되도록 빠른 시간에 30층까지 올라가자는 제안이었다.

이미 기세가 오른 혈맹원들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 올라갑시다.] 준범이 앞장서 20층으로 올라갔고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20층 입구에 2마리의 유니콘이 일행을 확인하고 접근하였지만, 뒤에 있던 마리의 화살이 어느새 2마리의 유니콘을 일격에 쓰러뜨렸다.

20층의 유니콘은 행동도 느리고 집단행동을 하지 않으니 다혜와 마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냥터였다.

격수의 근접공격이 이루어지기 전 이미 원거리에서 화살로 근처의 유니콘들을 쓰러뜨리니 30층까지 빠른 시간에 주파하였지만 문제는 30층에 있었다.

각개전투를 통해 단숨에 30층에 올라온 일행이 돌발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30층에 도착한 준범일행이 핼바운드를 찾기 위해 빠르게 흩어졌다.

준범이 말렸지만 이미 사기가 오른 혈맹원들은 통제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혈 원들은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긴 했다.

하지만 층별 보스는 일반적인 괴물과는 다르다.

녀석들은 머리를 쓸 줄 아는 영리한 녀석들 이기에 준범은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순간 옆을 지나는 두호와 데이비드를 보았다.

[두호! 데이비드 요정들하고 같이 다녀!] 데이비드와 두호가 힐끗 준범을 보았지만 무시하고 각자 흩어져 가던 길을 계속 뛰어갔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4시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요 ~ 아 아악!] 준범과 일행은 짧은 비명에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막내 현준이 어깨를 물린듯했다.

어깨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겁에 질려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다.

준범이 달아나는 현준의 뒤로 핼바운드를 확인했지만, 녀석은 다시는 현준을 따 라오지 않았다.

준범이 소리쳤다.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빨리 오세요 빨리요!] 일부 한국 인들이 오긴 했지만 모든 인원이 모이지는 않았다.

[자 우선 이곳에 모인 분들 잘 들으세요 절대 흩어지지 마세요 꼭 이동이 필요하면 함께 다니시고 핼바운드 나타나면 격수가 공격하고 나머지 인원은 원거리 공격 그리고 힐러들은 격수에게 힐 넣어 주세요.]

준범이 일행들에게 전달하고 있을 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Hey, this is it Help me, everyone] [Hurry up.] 데이비드였다.

준범은 데이비드가 소리치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지만 이미 먼저 도착한 두호 가 핼바운드를 처리한 뒤였다. 두호가 핼바운드의 송곳니를 보이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전투를 마치고 준범과 일행들이 아지트에 모였다.

화가 잔뜩 난 준범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왜 이러세요 제가 분명 흩어지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왜 통제를 따르지  않습니까?] [솔직히 핼바운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뭐가 그리 급해서... 지금 이게 뭡니까?  현준이 죽일 뻔했다고요.]

[앞으론 개인행동 하지 마시고 제발 진행 좀 따라주세요] 준범이 한바탕 쏟아내고 피해를 본 현준과 데이비드를 위로했다.

그 후 침묵이 흘렸지만 길어진 침묵을 깬 건 이마리였다.

[저기요~ 켑] [다음은 어떻게 해요? 우리 보상도 의논해야 하고...] 준범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와 회의석에 앉았다.

[좋아요 지난번 화 혈맹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번 보상은 알고 싶어 하는 것  2가지와 필요한 것 한 가지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동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싶은 것... 어떤 것 이 궁금한가요? 그리고 필요한 것 한 가지 뭐가 있을까요? 다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결론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자 ~ 그럼 이렇게 결론을 내겠습니다.]

[왜 우리가 이곳을 오게 되었는가와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필요한 것 한 가지는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많이 갈렸다.

캐릭터별 최고의 마법이나 기술 무기 등과 부활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그런 요구들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준범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자 모두들 준범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저는 여러분과 생각이 조금은 달라요 이번 30층 공략 때 느낀 건데...] [어차피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 혈맹처럼 부활권이나 최고마법서 혹은 무기 다 좋아요]

[하지만 조금 전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요, 하마터면 두 명이나 잃을 뻔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 혈맹에 있는 러시아 친구 두호와 미국인 친구 데이비드가 우리와 자유롭게 대화하고 생활할 수 있는 음성 언어번역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저들은 우리에게 아주 필요한 전력이기도 하거든요]

전혀 다른 내용을 이야기한 준범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기태가 준범에게 물었다.

[켑 한 가지 물어보자 지금 우리 화력으로 90층 그림자 보스를 이길 수 있겠어? 그렇지 않다면 무리가 되긴 하겠지만,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 바른 판단 아닐까?]

[물론 기태 형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를 얻어서 화력을 보강한다고 하더라도 통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공략이  더욱 힘들어지잖아요]

[예를 들어 힐러가 타이밍이 늦는다든가 법사의 버프 타이밍이 늦어지면 전멸할 수도 있잖아요]

[고작 30층에서도 이런 피해를 봤는데 어떻게 90층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우리 중 러시아어 가능하신 분 계시는가요? 영어는요?] 러시아라는 말에 두호가 어리둥절하며 좌우를 살폈다.

[그럼 켑의 말은 화력을 집중하면 가능하단 말인가요?] 마리가 기태의 말을 빼앗았다.

[어렵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전혀 승산이 없는 건 아니지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말이야.] 준범의 말에 이마리와 기태 형님이 동의했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의했다.

준범은 끝으로 보상내용을 정리하여 공표하였고 보상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 등장괴물 및 게임용어 -------

1) 핼 바운드 : 머리가 셋 달린 고양잇과 괴물

2 유니콘 : 머리에 외뿔이 달린 말 독특한 매력 덕분에 각종 신화와 전설에 자주 등장하며, 독특한 생김 때문에 미화되기도 한다. 유니콘의 유니(uni)는 하나를 콘(corn)이 뿔이라는 뜻으로 한 개의 뿔이라는 뜻이다.

3) 격수 : 원정대(특히 상위보스 파티)에서 보스 몬스터에게 딜을 넣는 유저를 일컫는 말.



준범과 두호를 제외한 일행이 첫 번째 퀘스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들 역시 흥분하고 있었다. 

준범이 느꼈던 희망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기세를 몰아 다음의 단계들마저 클리어하리라는 자신감에 모두 하나가 되어있었다. 

준범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인원이면 앞으로의 퀘스트는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을 하지만 상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협동이 되어야만 모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퀘스트는 화력이 될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기세만큼은 어느 때보다 높았기에 준범은 망설이지 않고 다음의 목표인 퇴마의 탑 30층까지 이동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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