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시전 31화]
[거기 비켜요]
문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빼앗긴 최 박사가 문밖의 이 형사를 확인하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200줄 차지 물러서요! 하나, 둘, 셋, 샷, 300줄 물러서요! 하나, 둘, 셋, 샷, 300줄 한 번 더 하나, 둘, 셋, 샷, 300줄 한 번 더...]
[그만하시지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간호사와 최 박사의 대화로 또 한 분이 사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최 박사가 이마에 땀을 훔치며 이 형사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형사는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었다.
[조금 전 모니터링 보셨지요!]
[예 확인 했습니다.]
[일찍 말씀드리려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그동안 말을 아꼈었는데 이제는 확신이 드네요.]
[어떤...]
[조금 전 모니터링 하실 때 죽은 남자 기억하시지요!]
[예 물론입니다.]
[모두 다 보셔서 알고 계시다니... ]
최 박사가 왼손으로 조금 전 자신의 환자를 가르치며 이형사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 이 마리 씨 에게 죽임을 당한 그 사람이 저 사람입니다.]
순간 이 형사의 미간이 거리를 좁히며 조금 전 사망한 사내를 흠칫 쳐다보았지만 이미 침대가운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뒤라 형태만 있을 뿐 이목구비를 확인하진 못했다.
[예? 뭐라고요? 조금 전 죽은 그 사람이 아까 이마리가 죽인 그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게임 속 이마리가 2명을 죽였고 두 명 다 같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저들은 현실과 이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들의 대화의 내용을 이곳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캐릭터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남아있는 육신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형사는 조금 전 자신이 다녀왔던 게임사에서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떠올라 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황급히 다시 게임 사 임원과 미팅 약속을 잡았다.
이미 이 형사는 최 박사의 말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굳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는 반듯이 게임 속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만 한다고 되뇌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 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이것을 저들에게 알려야만 한다고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이 형사의 머릿속에 계속 같은 생각만이 존재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차에 오른 이 형사가 급히 돌아온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예! 이재형입니다.]
[재형아! 빨리 들어와라.]
[서장님 지금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조금 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알아 그런데 여기가 먼저야! 아무 말 말고 빨리 와]
평소와 다른 강 서장의 차분한 목소리에 이 형사가 핸들을 틀어 경찰서로 방향을 잡았다.
그 시각 준범일행이 다시 70층 공략을 위해 모여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준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버럭 성질을 부렸다.
[군주 어디 갔어? 왜? 아직도 안 나와?] 준범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해하며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상함을 느낀 준범이 다시 이마리에게 낮은 어조로 물었다.
[야! 마리 너 어제 호진이 하고 같이 나갔잖아 같이 안 들어왔어?]
호진과 함께 나갔다는 것을 들킨 마리가 흠칫 놀라며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어... 몰라요! 어제 함께 나가긴 했는데... 먼저 들어간다고 했는데... 잠깐 이야기 좀 하다가 금방 해어졌어요. 그다음은 모르겠는데...]
놀란 마리가 말을 더듬으며 두서없이 말을 이어나가자 모두의 시선이 마리에게 꽂혔고 이마리는 얼굴이 붉어지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다들 왜! 날 쳐다봐 나도 모른다고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이마리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마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댔다.
[허! 정말이네! 정말로 나 의심하는 거 맞네 이러고도 우리가 혈맹원이야?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다들 너무하는 거 아니야?]
[같이 들어오지 않은 게 그렇게 화낼 일아야 왜 그래 더 의심스럽게]
이마리의 지나친 감정표현에 모두 당황해하고 있었고 준범은 확인이 필요했다.
준범이 지도를 펴자 아지트에 모여있는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혈맹원의 위치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도에도 없어? 그럼 설마 죽었다는 건가?]
준범이 씩씩대며 이마리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확답을 받으려고 같은 질문을 한번 더 했다.
[야! 이마리 너 분명히 어제 호진이하고 함께 나갔어. 그런데 그 이후 호진이가 지도에서조차 사라졌어.
이게 진짜 우연이야? 너 진짜 아니야?]
준범의 물음에 이마리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과 어이없다는 듯한 행동으로 자신의 결백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켑 너무하네 아니 다들 너무들 하네요]
그때 준범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마리를 몰아세웠다.
[마리 은단검 꺼내봐!]
불거진 의혹을 털고 가기 위해 물증이 되어줄 은단검의 상태 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모두 마리를 의심했지만 그녀는 눈물까지 보이여 인벤토리에서 은단검 한 자루를 꺼내어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 은단검은 처음부터 이마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너무해요 오늘 70층 원정에 저는 참석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함께 전투합니까?]
마리의 단호한 말에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야! 퀘스트를 포기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상관없어요 그렇다고 믿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하고 싶진 않아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마리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조용히 있던 데이비드가 준범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았다.
[켑 이제 어떻게 해?]
커다란 키에 몸집으로 보면 마치 k1에 나올법한 건장한 체구의 데이비드였지만 목소리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너무 여성스러웠다.
그런 데이비드의 목소리에 준범이 피식거리며 시선을 피하자 그 모습을 본 원정대가 따라 웃으며 무거웠던 상황이 잠시 가벼워졌다.
모두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기분 나빴는지 데이비드가 양쪽 어깨를 들어 올려가며 이야기하자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나 때문이야?]
데이비드가 쭈뼛거리자 준범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모두를 불러들 인후 공략설명을 하였다.
[모이세요 이렇게 된 이상 화력으로 잡아야겠습니다. 이번공략은 평소 우리 스타일대로 하겠습니다. 모두 익숙한 전략이라 잘 아실 겁니다.]
[모두 순간이동 주문서 100장씩 챙기세요 그리고 최대한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찾기 쉬운 곳에 두시고 10초 내외로 이동을 할 겁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이동하게 되니 이전보다 찾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하지만 중 요한 것 한 가지 명심하세요 절대 사냥은 하지 마세요 쓸데없이 사냥하다가 한 대라도 맞으면 그만큼 손해 봅니다. 우리 목표는 오로지 이리스입니다.]
[이동하다가 이리스를 만나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아시겠지만, 예를 들어 12시, 3시 반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모두 많이 해보셔서 아시잖아요!.]
[몸빵 되시는 분은 기다리시고 몸빵 안 되시면 위치만 알려주시고 다시 이동하세요 모두 모이면 그때 격수들이 앞장설 테니 뒤에서 힐 주시고 요정은 멀리서 활질 하시면 됩니다. 격주가 치기 전에 절대로 먼저 때리지 마세요 아시지요?]
평소 다른 유저들과의 전투가 일어나면 사용하던 전략이라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준비되었으면 올라가기 전에 풀마법 하시고 이동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부족한 마법을 시전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지나왔던 층들을 빠르게 달려 단숨에 70층에 도착하였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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