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눈물(#4)
두 명의 왜놈이 옥사에 갇혀있던 여인들을 불러 세우곤 능욕질을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눈 밑에 칼자국이 나 있는 민머리의 왜놈이 서있는 여인들의 가슴을 '툭, 툭' 건들며 지나가다 한 여인 앞에 멈춰 서는 여인의 치맛단을 왼손으로 끄집어 올렸다.
여인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두어 발 물러서더니 빙그르르 돌아 등을 돌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인의 비명에 곁에 있던 다른 여인들도 혼비백산하여 옷고름을 부여잡고 옥사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자 함께 있던 또 다른 왜놈이 달아나던 여인 중 한 명의 팔을 잡아챔과 동시에 여인의 뺨을 후려갈기며 말했다.
"이것들이 어디서 소리를 빽빽 질러대, 가만히만 있으면 살려줄 텐데 너희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나리 살려주세요"
팔을 잡혔던 여인이 바들바들 떨며 목숨을 구걸했지만, 왜놈은 여인의 등에 칼을 내리꽂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여인들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만 흘렸다.
바들거리는 여인의 모습에 흥이 난 왜놈들이 여인을 쓰러뜨린 후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인을 끌어안고 치맛단을 끌어올렸다.
눈 밑에 칼자국이 있던 왜놈이 바짓단을 내리려다 차고 있던 칼집이 거슬렸는지 칼집을 먼저 풀어헤쳐 바닥에 내려놓았고 뒤이어 바짓단을 무릎 아래로 끌어내렸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바들거리던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귀 뒤로 흘러내렸다.
여인의 몸 위에서 바둥거리던 왜놈이 몸을 바르르 떨 때 여인은 팔을 더듬거려 그자가 내려놓았던 칼을 집어 들어 순식간에 왜놈의 목을 그었다.
붉은 피가 흩어져 여인의 뺨을 타고 흘러 오른쪽 귀 뒤 검은 점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기가 남아있는 왜놈의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뒤쪽에 있는 남은 왜놈의 머리 위로 도끼질하듯 칼을 내리쳤다.
기척에 놀란 왜놈이 순간 몸을 트는 바람에 칼은 녀석의 머리가 아닌 오른쪽 귀를 베었다.
왜놈이 자신의 칼을 집어 들자, 옥사에 있던 여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자의 사지를 붙들었고 그자는 발버둥 쳤지만, 다수의 힘에 눌려 옴짝달싹하지 못하였다.
"命を救ってください 이노 치오 스쿳테 쿠다사이(살려주세요)" , 이러지 마! 살려줘!" 살려달라는 왜놈의 목소리가 절규하듯 옥사를 가득 메웠지만 그자의 절규도 자신의 최후를 알았는지 입 밖으로 나온 절규는 여인에게 닫지 못하고 옥사 밖으로 달아났다.
처음에 왜놈을 죽였던 여인이 그자에게 다가가 얼굴에 침을 뱉어내곤 다시 칼을 들어 그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여인이 죽인 건 왜놈들만이 아니었다.
이미 주검이 된 왜놈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여인이 결연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칼을 들어 자기 목에 가져가더니 말릴 새도 없이 목을 그어 자결하였다.
"아악! 뭐야! 하~ 꿈이구나" 죽고 죽이는 꿈을 연거푸 꾼 탓에 나는 슬슬 두려웠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꿈 이어진 듯 이어지지 않는 조각의 꿈들 그러나 분명한 건 모든 꿈에 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도깨비시장에서 구입한 칼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꿈을 꾸고 나면 무섭다는 생각과 애잔한 마음이 공존한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기분이다.
"빰빰 빰빠라 바라밤 빰빰" 요란한 알림에 분주한 기억을 한자리로 불러들였다.
찌뿌둥한 몸으로 세면장에 들어가 간밤의 악몽을 덜어내고 서둘러 환복까지 마친 나는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비상계단 쪽 문 뒤편에서 예상밖의 손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라 고개 돌려보니 비상계단문 뒤편에 있던 903호 할머니가 내쪽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 이세요?" 8층에는 우리 집과 804호 말고는 없다.
더욱이 804호는 장기 휴가 중이라 8층엔 혼자이기 때문에 나를 만나러 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출근하는 길인가?" 할머니가 나지막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예 혹시 절 만나러 오셨다면 다음에 오세요. 7시쯤엔 있으니 그 이후에 오시면 됩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사과라도 할 생각인가?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보통의 가정은 이 시간이면 아직 잠자리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할머니의 등장은 어딘지 불편하기도 했다.
마음이 불편하면 좋은 말이 나올 리 없기에 나는 짧게 목인사만 남겨두고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할머님이 손을 밀어 넣어 다시 문을 여시곤 나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씀하셨다.
"아들이 땡중을 찾고 있어 그자를 찾으면 자네가 먼저 죽여야 해 이번엔 아비 노릇 해야지"
"예? 저에게 하신 말씀 하여요?"
"그래 언제고 찾아와! 오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오겠지만…. 걱정하지 마! 아직 자네 차례는 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