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13화
# 달관자가 되신 어머니
아침에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셨는데 최근 들어 먹어본 밥상 중에 최고였다.
단순히 집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 딸 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어머니 역시 요리솜씨가 일품이었는데, 특히 어머님이 해주시는 꽃게탕과 콩나물무침 자반고등어와 고등어조림 그리고 비지찌개는 감히 역대급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맛있었다.
물론 어느 자식이든 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모두 맛있어하겠지만 동네사람들이 반찬가게를 권할 정도로 어머님의 음식은 맛있었다.
아침에 차려주신 메뉴에는 콩나물무침과 자반고등어가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즐겨드시던 고등어와 내가 즐겨 먹던 콩나물무침이었다.
자반고등어가 올라온 걸 보면 어머님은 혹시 아버지가 함께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음식들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자반고등어를 보는 순간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주인 잃은 자반고등어와 틀림없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콩나물 무침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유난히 콩나물무침을 좋아하던 나는 밥보다 콩나물을 서너 배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자반고등어는 언제나 연탄불로 구워주셨는데, 가스레인지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연탄불과 석쇠를 고집하셨고 이유를 물어보니 그래야 기름기도 잘 빠지고 훨씬 맛있다며 자신의 비법을 전수해 주셨다.
그렇게 정성 들여 차려주신 고등어가 오늘은 내 몫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간의 근황을 전하던 내가 조심스럽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 사실 며칠 전에 아빠식당에 갔다 왔는데... 거기에서 N을 봤어요 아무래도 함께 일하는 것 같았어요] 한동안 말씀이 없던 어머니의 대답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라 당황했었다. [장사는 잘~ 되던?] [예! 그럭저럭 되는 것 같았는데 모르겠어요 잠시 본 거라] [잘~ 돼야지 고생하는데...] [.......] 잠시 할 말을 잊었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지? 하며 존경심마저 들었다.
어쩌면 내가 N의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포기하셨거나 달관자가 되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N의 이야기를 하기 전 여러 가지 상상을 했었지만, 지금처럼 담담해하실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걱정하실 거란 건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뒤를 이어하신 말씀으로 비추어볼 때 두 분이 연락은 하고 지내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방장이 속 썪인다고 하던데 주방장이 있긴 하니?] [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주방을 들락 거리던데 그 때문이었구나...] [아마 직접 중화요리 배우신다고 하더니 그래서 주방에 계셨을 거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가계를 찾았을 때 주방과 홀을 들락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직접 다녀온 나보다 가계사정을 잘 알고 계신 어머니가 대단해 보였지만 어딘가 예전과 다른 느낌도 들었는데 굿이 표현하자면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겐 애정표현에 있어 적극적이셨고 우리는 당신의 삶 속에 언제나 1순위였기에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이 느껴질 만큼 따뜻했지만 지금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익숙한 리액션을 하고 있는 듯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혼이 나간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시며 오랜 기간 몸에벤 행동을 학습하듯 따라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조금은 복잡했다.
아버지와 내가 집을 비운동안 어머니는 동생과 둘이 살고 계셨는데 그사이 많은 변화가 생긴 듯했다.
이를 테면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화투를 치시기도 하셨으며, 가끔이지만 막걸리도 한잔씩 한다고 전해 들었다.
처음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막걸리를 드신다고? 그리고 화투를 치신다고?] 가족 중 누구도 화투를 치는 사람이 없었는데 [엄마가? 계다가 술을 드신다고?]
정말이지 엄청난 충격이었다.
분명 일탈이었고 심리적으로 힘들어하신다는 반증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되돌려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곳 어머님의 일탈을 응원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내가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촌누이의 조언과 영창이 엄마의 설득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바르게 살아오셨던 분이 오죽했으면 저러시겠냐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응원한다. 그래 한번 실컷 놀아봐”라고 이야기하셨던 고모의 응원과 “숙모 믿고 기다려봐 숙모가 어긋날 사람이냐? 아닌 거 너도 잘 알잖아” 라며 나를 설득해 준 누나의 조언이 나를 설득하였다.
특히 작은 고모가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셨는데 아버지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고 계셨지만 누구보다 어머니와 잘 지내셨으며 아버지에게 당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격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작은 고모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유일하게 자주 찾아와 주셨으며 아버지에게 어머니 잘해주라고 이야기해 줬던 유일한 친척이면서 아버지가 가장 의지하는 아버지의 누나이기도 했다.
그런 작은 고모가 엄마 편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머니는 든든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면 아버지의 가계사정을 잘 알고 계시는 것이 두 분의 소통 때문이 아니라 작은 고모를 통해 전해 들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침상을 물리시고 어머니가 동내어른들이 모여있는 가계방으로 가신다기에 나도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기에 한발 물러났는데 나중에 동생을 통해 그곳에서 어머니가 고스톱을 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분들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어른들도 몇 있었는데 그중 2명은 사실상 사기꾼에 가까운 질이 좋지 않은 아저씨 한 분과 먼 친척고모뻘쯤 되는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다.
먼 친척은 가계주인이었는데 막걸릿집을 운영하고 계셨고 당신 가계를 빌려주며 사실상 자릿세를 받고 있었고 아저씨 한 분은 전직타짜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본 적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체육관을 운영할 때 집에 찾아와 자신을 소개하며 화투장 뒷모습 만으로 어떤 것이 나오는지 단번에 알아맞히는 시연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해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 두 분이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일이었기에 뭔가 대책이 필요했던 내가 한 가지 꽤를냈는데 그것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하기 전 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먹자며 어머니를 불러들였고 어머니가 귀가하기 전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도박장을 운영한다며 제보하였다.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부운사이 경찰이 들이닥쳐 함께 있던 사람들 몇이 연행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벌금을 내기도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한동안 그곳을 가지 않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는 고스톱을 친 것이 아니라 잡생각을 잊기 위해 그들과 함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야 슬픔을 잊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슬픔을 잊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술을 마신다던가 어머니처럼 놀이에 집중한다던가 여자아이들처럼 웃고 떠들면 잠시 잊게 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 듯했다.
다만 내가 보기엔 당신이 선택한 방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을 선택하길 바랄 뿐이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요즘 술도 마신다며, 고스톱도 하러 다니시고] [왜! 그러면 안 돼?] [아니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안될 것 까지야... 다만 난 엄마가 슬픔을 잊으려는 방법으로 그건 걸 선택했다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소리지] 잠시 머뭇거리던 어머니가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데...] 하시며 대견해하셨다.
[그러지 말고 엄마 시 쓰는 거 좋아했잖아. 꼭 시가 아니더라도 일기라도 써보지 그래요 그렇게 엄마만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남기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이는데...] [그럴까?] [울 엄마 문학소녀였다며 선생님께서 그러시던데... 엄마 작가가 꿈이었다고 그리고 동내에서 영재로 유명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고...]
강원도로 전학 오던 날 어머니가 전학 온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는데 그곳에서 만난 생물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알아보셨던 일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선생님께서 어머니의 과거사를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때 마치 당시 들었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이나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었다.
어머니도 당신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미소를 보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