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류 ( 低流 )

by 서기선

어떤 날은

문득,
무릎 위로 하루가 내려앉는다.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어깨는 천천히 젖고
생각은 말없이 기운다.


단어조차 가라앉는 순간이 있고
눈을 감아야만
비로소 겨우 견뎌지는 밤이 있다.


모든 것이 잠잠할 때,
바닥 아래서만
흐르는 것들이 있다.


물 위에선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아래에선
누군가
울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아간다.


소리도 없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러나 틀림없이.


그래서
지금 멈춘 것처럼 보여도
당신은 분명 흐르고 있다.

그것도 아주 멎지게.


천천히,
조용히,
그러다 끝내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 작가의 말 -

삶이 무너질 듯 조용해질 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이번 시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울지 않기 위해 조용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입니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잖아요.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때가...

그런 그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입니다.

그런 사람은 겉으로 티 내지 않아도, 그 마음의 바닥에서는 여전히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그리 보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낮게 흐른다는 의미로 ‘저류(低流)’라는 재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멋지게”가 아니라 “멎지게”로 쓴 건 오타가 아닌 의도(意圖) 입니다.

오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멎다’는 흐름이 멈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의지적 멈춤이 아니라

멈춘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멋지게 흐르고 있기에 둘을 결합해 만든 표현이었습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홀로 고군분투하시는 분들 오늘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표현하지 않을 뿐 몰라주는 건 아니니 기운 내시고 파이팅 하셔요.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1화나의 히어로에게